2014년 4월 8일 화요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우리가 계획하고 숙고하며 결심하며 시도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은 이웃의 행복과 유익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특별히 "탐내지 말라"는 어구의 개입을 칼빈은 "하나님이 놀랍도록 안정된 마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며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자극은 바늘 끝만한 것이라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사랑과 욕망은 서로의 존재가 불편하다. 욕망은 자신을 향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을 향하는 것이다. 단 한 방울의 욕망이 우리의 마음에 번지면 사랑은 숨통이 조여온다. 단순히 욕망 한 방울의 분량이 사랑의 영토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변질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마음속에 탐심이 있는 이상,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고도 하였다.

이웃의 범위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그것은 사랑을 빙자한 이방인과 세리 수준의 집착일 뿐이라고 꼬집으신 바 있다. 그러면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할 것"을 명하셨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이웃의 범위가 원수까지 포함된 것이라면 친구의 처만이 아니라 원수의 처도 넘보거나 첩으로 삼아서는 아니되는 것이었다. 도둑질 금지령도 단순히 친구의 집만이 아니라 원수의 집까지도 전리품 명목으로 챙겨서는 아니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의 몰락에서 괜찮은 물품도 불을 태우거나 외면했다.

"집"은 이웃의 소유 일체를 다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것도 당연히 들어갈 것이지만 지식이나 통찰의 무형적인 것들도 해당된다. 타인의 저술이나 논문이나 발표나 설교나 강의도 탐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 경영인은 자금, 직장인은 진급 등등 어떠한 분야에 있더라도 탐심에 결박되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경책해야 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히 탐내지 않으면 준수되는 계명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율법 수여자인 예수님의 해석이다. 탐심을 제어하는 방식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은 그런 삶으로 십계명 해석을 보이신 분이시다. 열번째 계명은 우리를 그런 예수님의 삶으로 초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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