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3일 토요일

항암투병 일지 1

암판정은 아무도 예기치 않았었다. 의사들도 가족들도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부정할 수 없다. 이 사실이 모든 걸 바꾸었다. 아내는 곧장 중증환자 리스트에 올랐다. 나는 중증환자 보호자가 되어 거기에 맞추어진 삶이 이제 나의 일상이다.

한달 전이었다. 아내가 자궁의 혹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양평에 있는 개인 병원이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고가의 기구를 바닦에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거대한 사이즈의 혹이었기 때문이다. 대뜸 그 의사는 아내에게 "만약 이게 암이면 당신은 3개월, 길어야 6개월이 남은 것"이라는 사형선고 같은 소견을 내뱉었다. 다열질 의사분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진중하지 못한 반응에 신뢰도 가지 않아 종합병원 진료를 결정하게 되었다. 차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담당한 의사가 고참 의사를 불러서 자문을 구하였다. 혹의 사이즈가 커서 초음파에 다 잡히지를 않아 보다 정밀도가 높은 검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초음파를 본 의사의 소견은 자궁의 혹은 근종이지 암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아내의 친구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추천했다. 나와 아내는 그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거기에는 김영태 교수님이 이 분야의 전문가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보다 정밀한 판독을 위해 CT를 찍어야 했다. 검사한 결과, 여기서의 소견도 육종이 아니라 근종이다. 혹의 상태와 사이즈 때문에 자궁적출 이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었다. 이 혹을 제거하면 빈혈도 없어지고 빈혈이 해결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사들의 일관된 설명이 아내의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혹과 주변 장기들의 유착 때문에 출혈이 심하였고 대량의 수혈을 받아야만 했다. 간단하지 않았다. 집도한 의사는 가장 난해한 수술들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적출된 혹의 외관과 단면도를 보았다. 모양도 흉칙하고 사이즈도 거대했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기에 암은 아니었다. 김영태 교수님도 나의 판단과 동일했다. 아내는 수술 후 3일만에 퇴원했다.

10여일 정도가 지나서 우리는 혹의 조직검사 결과도 듣고 의사에게 감사도 표하려고 병원으로 갔다. 아내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김영태 교수님도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조직검사 결과가 적힌 모디터를 보던 교수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결과문을 읽으면 우리를 쳐다본다. 악종이다. 암이었다. 정확히는 자궁 평활근 육종이다. 암은 암종과 육종으로 구분된다. 위암이나 간암이나 폐암은 암종으로 분류되고 근육이나 뼈에서 발생한 암은 육종으로 분류된다. 적출된 아내의 혹은 근종이 아니었다. 근육에서 발생한 암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양평에서 진료한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3-6개월 시한부 인생일 것이라는.

수술을 할 때에 암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림프절을 제거하지 않았다. 림프절은 주로 암이 제일 용이하게 전이되는 곳이었다. 일단 암의 전이상태 확인을 위해 긴급하게 PET와 MRI 촬영에 들어갔다. 검사한 결과, 전이는 없었으나 폐에 결절들이 여러 개 있었다. 전이된 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CT를 찍어야 한다고 해서 다시 검사했다. 폐결절의 경우, 폐렴, 결핵, 곰팡이 감염, 과오종, 폐암, 전이암 가능성이 있지만 CT를 촬영해야 정확히 규명된다. 그러나 검사한 결과 폐결절은 명백히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전이된 암이 아니었다. 이로써 아내는 자궁 평활근 육종 1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곧장 항암치료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암이라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도 어려웠던 우리는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아 권고한 입원일을 몇 일 미루었다. 면역력을 높이는 자연적인 치유냐 아니면 항암제를 투약하는 치료냐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양한 조언과 가능성을 다 종합하여 항암치료 받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3주 간격으로 여섯번의 치료를 받는 것이었다. 겨우 1기인데 굳이 항암치료 들어가야 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의사는 아내의 육종이 희귀하고 대단히 사나운 놈이어서 전이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빨리 제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림프절도 떼어내지 않아 치료를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우리는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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