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3일 일요일

속임과 희락의 출처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잠12:20)

속임은 악을 도모하는 자의 마음으로 소환된다. 악의 도모와 속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짝이다. 속임의 극복은 정직의 고수에서 비롯되지 아니하고 악을 도모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품어야 가능하다.

악을 도모하면 가장하는 일들이 뒤따른다. 없는데 있는 척하고,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사랑하지 않은데 사랑하는 척하고, 기쁘지도 않은데 기쁜 척하고, 진심이 없는데 진심인 척하는 일들이 뒤따른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결코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한다. 그러면 자신의 불쾌한 정체가 드러날 수 있어서다. 온갖 종류의 속임수가 표정과 행동과 언어를 뒤덮는다. 그러나 고작해야 나뭇잎 치마에 불과한 속임수다.

악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속임수에 대한 초청이다. 그런 마음에서 속임이 스물스물 움튼다. 악을 미워하는 것은 거짓을 멀리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지혜자의 잠언은 옳다. 악을 미워하는 것이 속임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다.

마음의 희락은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희락의 확보는 마음의 결단으로 되지 아니하고 집착도 무용하다. 희락은 화평을 도모하는 자의 마음에만 머문다. 화평하는 사람의 표정과 언어와 행동에는 늘 희락이 깃들어 있다.

화목을 도모하지 아니하는 자의 마음에는 희락이 없다. 사람들은 때때로 왜 나에게는 슬픔이 있고 우울이 있고 걱정이 있고 눌림과 침체가 있는지를 묻는다. 이유를 몰라서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더불어 화목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한다.

속임과 희락은 마음의 도모에서 비롯되는 파생적인 현상이다. 선을 도모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출입할 수 없고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의 마음에는 희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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