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7일 목요일

재앙에 대한 반응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잠17:5)

여기서 "사람"은 특정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재앙이 기쁨을 유발하는 경우는 대체로 그것이 악인에게 혹은 원수에게 닥쳤을 때입니다. 평소의 행실이 음란하고 포악하고 가증하고 사악한 사람에게 재앙이 임하면 마치 하나님의 공평이 구현되는 듯하여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은밀한 갈채를 보냅니다.

이런 반응에 하나님은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라는 하나님 지식이 갈채의 든든한 보증과 명분까지 보탭니다. 그런데 오늘 지혜자는 사람의 재앙은 일체 기뻐하지 말랍니다. 그런 자는 형벌을 면할 수 없답니다. 그러므로 악인나 원수의 재앙이나 패망을 목격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재앙, 특별히 악인이나 원수의 재앙을 기뻐하는 것의 배후에는 일반적인 권선징악 개념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물론 악한 일을 경계하고 선한 일을 권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선악의 판별과 그것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 사람의 사사로운 기준이 작용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재앙은 나의 초라한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한 주먹이 사용된 것이기에 나 자신의 사사로운 견해나 관여 없이도 나의 기준이 화끈하게 구현되고 옳다고 확인된 사건인 것입니다. 이로써 밖으로 들키지 않고도 나의 기준과 판단이 은밀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 셈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간 존재의 대단히 복잡한 심리적 작용이 밀어낸 결과적 현상인 것입니다. 당연히 결과로서 기쁨은 인간의 본질과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출구인 것입니다. 우리로 기쁘게 하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면 그것에 호응하는 우리의 내면이 보일 것입니다. 지혜자는 단순히 재앙에 대한 기쁨의 표면적인 반응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란 현상으로 표출된 내면의 상태와 문제의 심각성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재앙의 주체는 얼마든지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재앙을 볼 때마다 두려워 하고 떨어야 할 것이며, 재앙을 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함께 아파하는 게 마땅한 반응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시고, 우리는 어떤 자인지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자리에 엎드리는 게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늘상 무수한 재앙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무시로 반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주 일상적인 현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 함을 지혜자의 권고에서 배웁니다. 어떠한 재앙이든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것, 우는 자로 함께 울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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