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7일 목요일

세상의 어리석은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세상의 학문은 사람의 성장기를 따라 구별된다. 사람이 어릴 때에는 후견인 혹은 청지기의 권위 아래에 있듯이 신앙이 어릴 때에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다고 바울은 설명한다. 그러나 믿음이 장성한 이후에는,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 이후에는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 세계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다. 주님은 세상에서 지혜롭다 하는 자들의 사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라"고 기록한다.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은 자비와 심판과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 것을 자랑의 이유로 삼으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어떤 생각과 판단과 결정의 배후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모든 게 자기신뢰 결과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나아가 시인은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권하는데 이는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사람의 지혜가 신앙의 토대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인생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부요하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민첩하고 아무리 준수하고 아무리 건장하게 보여도 의지의 대상은 아니다. 당연히 인간문맥 안에서 형성되고 승인되고 통용되고 가치화된 지식과 지혜와 질서에 우리의 신앙을 위탁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다.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우매함의 종식은 간단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희생과 결단이 요구된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초등학문 일체를 상대화시키는 것에는 과히 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수반된다. 우리의 사랑은 지식에 있어서 그리고 분별력에 있어서 자라가야 하는데 그런 자람이란 기존에 익숙하던 지식과 지혜와의 결별을 수반한다. 그러니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란 오명을 뒤집어 쓸 각오는 주를 따르는 자들의 기본기다. 천지를 진동시킨 주범으로 내몰려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내공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온 땅에 배푸신 일반적인 은총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온전하게 된다.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항구적인 초자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마련된 계시의 수단이다. 이것과 세상의 어리석은 지혜를 혼돈하면 안되겠다.

공기는 디오게네스가, 물은 탈레스가, 불은 히파수스가 숭배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2세기의 교부 클레멘트는 이처럼 기초적인 물질들이 숭배되는 것을 개탄하며, 교회의 사랑이 지식과 분별력에 있어서 자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우주와 인생에 관한 물음들을 머리에 넣고 살아가는 철학자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린 아이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탁월해도 종의 아들은 상속자가 되지 못한다는 어법으로 세상의 지혜를 평가한다.

우유에 준하는 세상의 학문을 진리의 반열에 무모하게 삽입하는 이들을 교부는 베이비로 규정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연단되지 않은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한다. 진리에 장성한 자는 이성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변하는 감별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감별력 자체가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꼼꼼하게 검증하여 분별된 "선한 것들"을 확고히 붙들어야 한다는 바울의 권고까지 교부는 추가한다. 분별의 기준이 진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른 기준으로 분별된 선악은 거짓이다.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규모를 갖추고 모든 것들을 검증하고 분별하여 선한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고수하되 이 모든 행위들이 지향하는 목적의 중요성을 바울은 지적한다. 즉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고 자신에게 영광이 돌려지는 결과는 올바르지 않다. 이는 스스로 추해지고 망가지는 첩경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에 이르라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의의 열매로 풍성해야 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분별의 기준인 진리를 확보해야 한다. 2)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3) 진리에서 자라간 만큼 분별의 지경은 확대된다. 4) 나아가 삶의 전 영역에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5) 분별에서 중지하지 않고 분별된 악은 피하고 선은 고수해야 한다. 6) 이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지향점을 놓쳐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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