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7일 월요일

자유를 생각한다

1. 인간의 자유는 피조된 자유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와는 다르다. 인간에게 설정된 피조물적 자유를 넘어가면 자유가 박탈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유의 확대라고 착각한다. 이걸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2. 인간의 자유는 외부에서 부여된 자유가 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고 명성이 있으면 허락되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소유물이 제공하는 자유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댓가의 지불이 요구된다. 워낙 은밀해서 감지되기 어려운 댓가이다.

3. 인간이 생각하는 자유는 오히려 구속을 자유로 오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내가 소유하여 누리는 자유의 수단에 내가 결박된다.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소유하면 자유도 그만큼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은밀한 결박이 확대된다.

4. 부자유의 가장 큰 원흉은 인간 자신이다. 돈이 없어서 소비하지 못하는 부자유, 건강이 나빠서 움직이지 못하는 부자유, 관계가 틀어져서 소통하지 못하는 부자유 등은 아직도 본질적인 부자유가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부자유가 최악의 부자유다. 

5.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기에 자신의 소유물에 의해 자유가 좌우된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돈에 결박되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에 결박되고, 권력과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에 결박되고, 죄성을 가지고 있으면 죄의 노예가 된다.

6. 소유물이 제공하는 자유의 배후에는 결박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소유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소유물에 의해 사유자가 소유당한 바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가 내 안에 계시는 방식으로 그분을 소유하면 자유는 차원이 달라진다. 

7. 인간이 생각하고 구현할 수 있는 자유의 차원은 고작해야 피조물적 자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자유는 신적인 차원까지 확대된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8. 성도에게 허락된 자유는 신적인 자유이다. 목에 죽음의 칼이 들어와도 빼앗기지 않는 자유는 신적인 것이다. 땅의 육신을 위협하고 죽이는 권세에 얽매이지 않고 영혼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분에게만 제한되는 자유의 확대가 성도에게 가능하다. 

9. 성도의 자유는 빈부나 귀천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원리가 붙들고 있어서다. 땅의 어떠한 요소도 간섭할 수 없는 하늘의 자유는 성도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땅의 자유와 하늘의 자유를 거래하는 우매자가 적지 않다. 

10. 자유의 극대치 혹은 가장 높은 차원의 자유는 내가 부인되면 될수록 증대된다. 부자유의 마지막 원흉은 인간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부인 없이는 진정한 자유의 구가도 그림의 떡이겠다. 자기를 부인하는 최고의 방편은 믿음이다.

11. 믿음이 제공하는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저촉을 받는 무한대의 자유이다. 바울처럼 모든 것에 자유한다. 믿음은 우리의 신분과 재산과 지식과 경험과 인맥과 업적의 공로적 횡포에서 우리를 구제하는 수단이다. 믿음보다 더 좋은 선물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12. 무한하고 광대하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피조물적 자유의 최대치 그 이상의 차원이 제공되는 근거이다.

13.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어두움의 결박은 풀어지고, 생명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사시면 사망의 결박도 없어지며, 거룩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부패의 횡포도 소멸되고, 소망이신 그분으로 인해 절망의 사슬도 끊어진다.

14. 아들이 자유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유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자유의 열쇠시다.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서 우리는 자아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부인에서 그리고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신앙에서 그 열쇠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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