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1일 월요일

하나님이 상급이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8-9)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한다. 구원의 완성이 인간의 손아귀에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원과 정도에 관한 권면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도 정도의 문제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있어서도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에 있어서 자라가야 한다는 정도와 관련된 권면이 있다.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얻는다는 것도 모두에게 획일적인 상태나 동일한 내용이 아니라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얻으려고 모든 것의 상실과 유익한 것들의 배설물 취급도 불사했다. 이것은 일회성 추구가 아니었다. 삶의 항구적인 속성처럼 그것이 빠지면 살았어도 사는 게 아니었던 추구였다. 그리스도 추구 자체가 그냥 삶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상급이란 말은 어떤 물리적인 소유물이 나의 임의적인 처분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만 보아도 분명하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고 불변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은 유한하고 한시적인 존재이며 손바닥 뒤집듯이 수시로 변하는 인간에 의해 소유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상급으로 주어진 바 되신다는 건 이루말할 수 없는 은혜이며 기적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그런 소유를 상상하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바울이 취한 태도에서 그 비밀한 소유의 감미로운 실루엣을 포착한다. 바울은 모든 것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돌리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길 소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로잡힌 바 된 바로 그것을 좇으려고 일평생 질주했던 사도였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미치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사로잡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박되지 않고 좌우되지 않는 자, 그가 바로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의 모습이다.

바울은 이미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는 완성되지 않을 질주라는 이야기다. 나그네의 여정이다. 오직 완성의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일방향 질주가 성도의 인생이다.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라는 차원의 지경을 넓혀가는 인생이다.

지경을 넓히고 또 넓혀서 나에게 하나님이 기쁨이고 하나님이 영광이고 하나님이 향유이고, 하나님이 찬송이고, 하나님이 안식처고, 하나님이 전부라는 온전한 상태에 대한 시인의 갈망과 노래가 미시건의 청쾌한 아침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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