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31일 목요일

존재가 선행된 추구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7:6)

성경에서 개는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되며, 들짐승에 찢겨 죽은 동물을 먹고 토한 것을 다시 삼키며 죽은 사람의 피를 핥는 동물이다. 이를 테면 나봇과 아합의 피를 핥았고 이세벨의 시체를 삼켰으며 사도 요한은 마술사, 음란한 자, 살인자, 우상숭배 및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개들이라 칭하였다.

거룩한 것은 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진주가 그 값어치를 모르는 돼지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돼지에게 가치의 기준은 자신의 위장이다. 고귀한 것은 고귀함을 알고 존중하는 자에게 주어짐이 합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진주는 아무리 고귀해도 주어진 자에게 불편하고 불평의 원인이 되고 그 자체도 멸시되고 짓밟힌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이후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셨다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은 결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시지 않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어떻게 두드리고 찾고 구하라는 말씀인가? 거룩한 것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고 진주의 값어치를 알고 존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존재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깨끗함을 깨끗한 자에게 보이시고 거룩함을 거룩한 자에게 보이시고 의로움을 의로운 자에게 보이신다. 하나님은 증오심이 가득한 자에게 긍휼을 맡기지 않으시고, 시기심이 가득한 자에게 공감의 비밀을 맡기지 않으시며, 거짓된 자에게 정직을 맡기지 않으시고, 포악한 자에게 자비를 맡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는 먼저 구하는 것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 요청된다. 예수님이 복되다고 말씀하신 팔복의 내용을 주시해 보면 복된 자의 됨됨이가 어떠하기 때문에 그가 복되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개나 돼지는 존재의 변화가 없이는 본질상 어떠한 가치나 의미도 누리지를 못한다.

여호와의 눈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온 땅과 만민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까지 주실지도 모른다. 아들도 아끼지 않고 죽음에 내어주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시고자 하신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자가 복되다. 심령이 가난하여 자신을 다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 자신의 죄도 아닌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온 인류의 비참을 애통해 하신 그분, 의를 위하여 억울한 핍박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묵묵히 받으신 그분, 자신의 생명으로 원수조차 화목하게 하신 그분과 같은 자 말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온 세상과 만민을 섬기는 게 가능하다. 개의 더러움과 돼지의 무지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더럽게 변질되어 개가 핥고 진주보다 더 고귀한 하나님의 이름이 돼지의 발굽에 짓밟히는 일들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존재의 거듭남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한 듯하다. 중생의 씻음과 진리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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