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서로 사랑하는 교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으로 온 가족이 가정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를 인도했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쌍방적인 사랑을 강조했다. 각자가 받은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형편이나 신분이나 지위에 있더라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

"내리사랑" 개념도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가 사랑의 주체와 객체가 되는 쌍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누구도 감히 여기에 반론의 토를 달아서는 아니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 사랑을 일방적인 사랑으로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어떠한 댓가나 이익을 고려함이 없는 그저 희생적인 무조건적 사랑을 하되 몇몇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방적인 무조건적 사랑이 한 사람의 기독교적 영웅을 만들 수는 있어도 건강한 공동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면 생색낼 이유가 없어진다. 모두가 그렇게 사랑하면 말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 상하와 우열의 개념도 사라진다. 형제와 자매로 모두가 사랑을 하는 주체가 되고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자리를 침노하는 사랑이 아니라 각자가 선 자리에서 발휘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제도나 상황이나 상태나 소유나 성별이나 노소와 무관하게 둘을 하나로 묶는 띠가 바로 사랑이다. 이러한 연합이 혼돈이나 무질서로 보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거룩한' 혼돈이요 무질서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다. 유일한 명령이다. 신구약의 계명을 다 포괄하는 명령이다. 율법과 선지자들 및 사도들의 강령이다. 극소수의 희생적 일방적 무조건적 사랑을 생산하는 사회보다 모두가 그런 사랑의 주체로 동등하게 참여하고 협력하며 일구어진 사회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그게 교회의 모습이다. 주님의 유일한 마지막 명령이 바로 그런 교회의 쌍방적 사랑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내 가정이 그런 교회이면 좋겠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가 그런 교회이면 좋겠다. 내가 속한 교제권이 그런 교회이면 좋겠다. 내가 만나고 교제하는 다민족 자매들과 형제들이 그런 교회이면 좋겠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 그런 교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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