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칼빈의 섭리

주님의 은밀한 계획: 나면서 소경된 사람의 경우,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요9:3). 재난이 출생에 앞선다고 하는 경우, 무죄한 사람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의 본성은 소리친다.

우리는 겸손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해명하지 않도록 힘쓰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밀한 심판을 존중하여 그의 의지를 만사의 가장 공정한 원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심한 폭풍우가 일어날 때 침침한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천둥이 귀를 때리며 공포로 우리의 모든 감각이 마비되기 때문에 일체의 사물이 우리에게 혼란해지고 뒤엉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하늘은 항상 평온하고 청명하다.

하나님을 생각하된 자기를 창조하신 분으로 우주의 창조주로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두려워 하며 공경하는 자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바르고 유익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개'들이 이 교리를 독살스런 이빨로 물어 뜯으며 혹은 적어도 소리내어 짖고 있는데, 이는 저들은 이성이 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렐에게 보낸 칼빈의 편지: "내가 가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함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mihi esse negotium cum Deo)."

우주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의해 지배됨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시36:2)이란 말씀은 무슨 뜻으로 기록된 것인가에 대해 저들은 답변해야 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11:33-34). 실로 율법과 복음은 우리의 감각을 훨씬 초월하는 신비를 그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말씀으로 계시하길 원하셨던 이 신비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신자들의 마음을 총명의 신으로 조명했기 때문에 이제는 심연이 없어지고 다만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 생명의 빛, 확실하며 분명한 진리의 학교가 있을 따름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방법, 심연은 우리 생각에는 감추어져 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을 경건하게 경배하게 된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고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다"(신29:29).

어거스틴: "최상의 질서를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선한 의지로 율법에 의거하여 행동하나 다른 점에 있어서는 율법에 의거하여 움직인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는 불변의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우주 통치의 권리를 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이를 견실과 겸손의 율법으로 삼아 하나님의 최고의 권위에 복종하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의지를 의의 유일한 법칙이며 만물의 가장 의로운 원인으로 간주해야 한다.

Agammemnon: "죄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에게 있다." 이런 논리를 기독교에 적용하여 모든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무례의 극치가 곳곳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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