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4일 화요일

컨설팅의 질의응답 시간

피터의 견해

벨하 고백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어떤 가능성을 타진하고 싶었다. 이 컨설팅의 결과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 confessional church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세나 종교개혁 시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세계 개혁교회 연합의 결성, WCRC의 미래는? 모이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연합을 이룬다. 어떤 이슈가 떠오르면 우리는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기에서 확인했다. 기쁨과 우려의 이슈들을 다 다룰 수 있다. 우리는 서로 관여할 수 있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우리는 서로 관여할 수 있다. 사랑의 띠로 묶여져 있어서다.

윌리엄의 진행

총회는 EFD를 유일하게 만든 이유가 벨하만이 아니다. 다른 문헌들에 대해서는 이 범주에 어떻게 삽입될 수 있겠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처리할 것인가? 이 컨설팅은 벨하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이것을 구분하면 좋겠다.

제리의 제안

EFD라는 새로운 범주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후대에 컨설팅에 참여한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적시되지 않으면 동일한 대화와 생각만 되풀이될 뿐이겠다. 그리고 EFD가 단순히 개념적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교회 정치가 다르고 다양하다. 대단히 민감하다.

무와이의 제안

EFD 항목에 웨민을 넣는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일관성이 거기에 발견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의 결과에 대해 정확하게 리포트에 명시하면 좋겠다. 진실로 이 범주를 원하는 정확하고 정직한 이유를 적시하면 좋겠다.

요시의 제안

이번 컨설팅을 통해 CRC가 얼마나 이 새로운 항목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고심해 왔는지를 느꼈다.

아프리카 대표

CRC가 시작하여 다른 목소리를 이 항목에 대해 경청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WCRC의 섬김과 영접에 대해 감사해야 되겠다. 이러한 주제를 다른 파트너 개혁교회 멤버들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비어마의 견해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이 들어가지 않아 아쉽다. 다음 단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는가? WCRC의 방향성과 다음 과제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피터의 진행

이번 모임의 중요성은 이런 범교회적 대화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그리고 8천만명의 개혁교회 멤버들은 다양한 문화와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WCRC의 집행부는 신앙고백 차원의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5월에 모인다. 우리는 고백적인 교회이다. 벨하 고백서는 어떻게 불려지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현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가 중요하다. 단순히 벨하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신실한 것과 인내하는 것은 유사하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WCRC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 정말 중요한 것은 동일한 공유점, 우리를 묶는 것, 우리가 믿고 말하고 지지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WCRC은 범교회적 기구이다.

남아공 대표

컨설팅의 목적은 결론을 도출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결과물을 산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로 조언해 주는 것 자체가 WCRC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여기에서 무슨 대대적인 행사를 성취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동일한 개혁신앙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마지막 보고서는 정말 잘 정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DECREE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어떤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마음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다우어 생각

나이가 들수록 역사적인 성향을 갖는다. 고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WCRC 논의의 한 일부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보고서도 너무도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부흐레 (남아공 대표)

교회의 정치에 있어서 다양성과 차이점은 때때로 우리를 실망하게 만든다. 어떤 새로운 시대를 묵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화의 장을 열어 어떤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습이 큰 감동으로 밀려온다.

제리의 결어

가치관이 중요하다. 어떤 문헌이 왜 중요하고 가치있나? 어떤 새로운 항목이 만들어질 수 있다. 너무도 중요한데 고백서 레벨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을 포괄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벨하는 삶을 언급한다. 이것들은 교회가 옆으로 재낄 수 있는 이슈들이 아니다. 정의와 연합과 화목은 삶과 교회의 필수적인 사명이다. 벨하 고백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그런 사유의 가능성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WCRC의 목적은 7년마다 모이는 총회가 아니다. 이러한 대화에서 연합과 공감과 협력이 진행되는 것에 있다. 선교에 있어서 대화가 필요하다. 교단간, 종단간 대화를 희망한다. 다른 교회도 우리와 더불어 교회의 선교를 언급하고 논의할 수 있다. 조언을 서로 구한다. 연합이 무엇인가? 놀라운 다양성 속에서 어떻게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가? 무엇이 정의이고 신학인가? 개혁주의 신학적 사유가 너무도 중요하다. 범교회적 발걸음도 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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