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궁극적인 원인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는 재판장이시다 (시75:7)

이것은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였다. 하나님은 만사를 움직이는 섭리의 주체시다. 원인이 가려진 사건을 우연이나 운명으로 돌리는 상식적인 해석에서 나올 수 없는 결론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결론을 고수한다. 그리고 범사에 적용한다.

형통할 때에는 찬양함이 마땅하다. 가까운 원인 제공자를 주목하여 띄우기에 들어가면 당사자를 망친다.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건 사람에게 영광이 돌려지는 것은 그 사람에게 독약이다. 설교의 울림이 컸던 헤롯의 비참한 최후가 이를 입증한다.

어려울 때에는 생각함이 마땅하다. 여기서 생각이란 주변의 원인들을 살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원인들의 원인이신 하나님을 사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인물의 잘못이 아무리 명확하다 할지라도 그의 멱살을 조이는 대응은 올바르지 않다.

우리는 낮추면 나쁘고 높이면 좋다고 쉽게 생각한다. 낮아지면 하나님의 저주가, 높아지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낮아짐이 복일 수도 있고 높아짐이 형벌일 수도 있다. 표면적인 현상이 궁극적인 가치에 대응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녀들이 실수하면 그들을 문제의 원흉으로 몰아부쳐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자녀들이 화려한 성적표를 가져오면 왕자처럼 떠받쳐 온갖 당근으로 자녀들을 길들이는 부모의 과잉대응 사례는 어디를 가도 희귀하지 않다. 다 하나님이 사려되지 않았다.

궁극적인 원인이신 하나님을 사려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대상을 추앙하는 인간의 뒤틀린 본성은 고삐가 풀어지는 법이다. 열쇠를 하나님 안에서 찾지 않고 가까운 주변에서 적당한 인과를 탐색하고 찾으면 만족하는 성향이 개인과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고난도 유익이고 죽음도 영광일 수 있다는 도발적인 해석과 인식과 확신이 없어지고, 세상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손익의 분기점을 기준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진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렇게도 중요하다. 만물과 역사가 거기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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