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1일 토요일

성화의 영광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훨씬 더 (롬5:9)

구원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괜찮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셨다는 말은 구원이 우리에게 어떠한 근거를 두지 않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행위라는 말입니다. 즉 구원의 댓가를 지불한 적이 없는데도 주어졌기 때문에 "값없이"고, 구원의 댓가가 화폐가치 개념으로 측량될 수 없도록 무한해서 "값없이"인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것은 죄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일 뿐입니다. 온 세상에 죄가 관영했을 때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인류가 홍수에 휩쓸리는 집단적인 사망이 있었으나 죄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악함을 보시고도 물로써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막강한 삯이 요구되는 죄문제의 해결은 인류의 대규모 죽음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에서의 구원이 이 세상의 어떤 저울로도 계량될 수 없도록 놀랍고도 무한한 은혜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서 보여진 은혜의 크기는 구원을 가능케 한 희생물의 무게로 가늠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즉 완전한 하나님와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무게만큼 구원은 그 값이 측량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지고 입증된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크기도 그리스도 예수의 크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크기는 우리가 죄인과 원수의 신분으로 있을 때에 받은 은혜의 크기일 뿐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고는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훨씬 더" 크고 놀라운 구원과 기쁨이 주어질 것이라는 바울 특유의 점강법이 나옵니다. 화목의 자녀가 된 우리가 누리도록 초대받은 구원의 영광은 죄인과 원수의 신분에서 받은 구원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크다는 말입니다.

성화는 드디어 좁고 협착한 길로 운명지어 진 고난과 슬픔의 길이 아닙니다. 중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감격을 누리도록 주어진 영광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런 영광의 길을 마다하고 사람들의 영광에 침 흘리는 모습이 간간이 보입니다. 추해 보입니다. 주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길과 이르기를 원하시는 영광을 멸시하고 사람들의 탐심이 쏠리는 곳에 성도의 발걸음도 운집해 있습니다.

오늘은 성화의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을 깊이 묵상하는 하루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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