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금요일

미련함을 생각한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다 (잠26:1)

성경은 미련함에 적잖은 관심을 보인다.

1) 무엇보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긴다.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보다 미련한 자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성을 표상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 중의 하나다. 참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고작 껌 수준으로 여기는 정신의 소유자를 미련한 자라고 성경은 규정한다.

2) 성경은 미련한 자를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는 자라고 묘사한다. 황금만능 사상 혹은 화폐가치 기준의 거래를 삶의 원리로 간주하고 그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미련하다. 지혜는 땅에서 어떤 대체물이 있어서 거래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미련한 자는 그런 걸 가리지 아니한다. 성경은 이것을 무지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미련한 자는 무지하다.

3) 미련한 자는 분노의 즉각적인 표출에 민첩하다. 눈빛과 표정과 언어를 분노의 출구로 마구 동원한다. 이는 억울한 수욕도 참아내는 지혜로운 자와 사뭇 대조된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분노의 노예는 미련하다. 자신의 분노가 정당한 것임을 보이려고 공평과 자유 개념을 급히 소환하는 사람은 더더욱 미련하다.

4) 미련한 자는 자기의 길이 늘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길과 다르면 모두 그르다는 판단력에 늘상 포박되기 때문에 미련하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들은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를 아니한다. 지성과 인격의 지평이 확대되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유아독존 가치관의 노예이기 때문에 미련하다.

5)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다고 한다. 낙이기에 행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지혜를 낙으로 삼는 명철한 자와는 다르다. 나에게 즐거운 것을 했을 뿐인데 그게 늘 행악이다. 행악인데 그것이 즐거운 체질의 소유자는 미련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관찰해 보면 행악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적지 아니하다. 그것도 모르고 낙의 방편으로 행악과 동거하는 자, 심히 미련하다. 이렇게 미련한 자의 아비, 살아갈 낙이 박탈된다.

6)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적당히 감추지만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떠벌린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 자체를 삶의 낙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 가릴 건 가리고 공유할 건 공유해야 하는데, 그 경계선에 질서와 안전감이 없다. 가려야 할 것을 마구 노출한다. 그게 미련함인 줄도 모르고.

7)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에 군침을 흘린단다. 지혜자는 현명한 자의 마음이 지식에 갈증을 느끼고 추구하는 것과 미련한 자의 입맛을 대조한다. 미련한 것이 땅기면 자신에게 미련함이 있다는 표증인데 그것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취하기에 급급해 하며 달려든다. 내가 무엇에 갈증을 느끼고 있느냐가 나의 상태를 고발한다.

8) 미련한 자는 명철이 아니라 자기의 의사 표출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단다. 미련한 자는 신중하게 듣고 깊이 생각하여 올바른 판단에 도달하는 것보다 자기의사 표출에 요란한 조급증을 보인다. 상대방의 입장에는 관심도 없고 무례한 말 자르기도 불사한다.

9)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둔다고 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혜를 가까운 곳에서 찾지만 미련한 자는 지혜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먼 곳에 던진다. 지혜는 길거리에 시장에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존재의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도 거기에서 찾지를 아니하고 아득히 먼 곳에서 지혜를 추구한다. 사실 지혜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다기보다 명철한 자 앞에서는 언제든지 어디서든 발견되는 것이다. 미련한 자의 눈은 어디에 머문다 할지라도 지혜를 포착하지 못한다.

10) 미련함은 대단히 완고하다. 성경은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빻아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린다. 미련한 자의 소유는 미련한 것뿐이고 미련한 것만 말하고 개가 토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듯 미련한 행위를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한 자와의 마주침은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는 것보다 피해야 할 일이란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합당하지 아니하다. 이는 미련한 자에게 차별대우 하라는 게 아니다. 미련한 자 자신이 영예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어서다. 영예를 기뻐하지 않고 즐기지도 않고 구하지도 아니하고 심지어 영예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미련함은 땅에서는 도무지 해답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비록 "말이 조급한 사람"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보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큰 희망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으로 상대화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미련의 해결은 미련한 자가 소멸되는 것에서 찾아진다. 당연히 해결책은 그리스도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련함과 무관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모두에게 해법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물론 멸망할 자에게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도 미련하게 보인다는 절망이 여전히 미해결로 남지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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