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외모와 중심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외모와 중심의 구분은 쉽지도 않고 간단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중심이나 외모라는 것은 객관적인 부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구분은 사람의 몫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게 중심이고 인간이 보는 게 외모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서 보자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는 게 중심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모든 관찰이 외모를 보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주목한 엘리압은 품행도 방정하고 용모도 준수하고 키도 훤칠한 지도자적 자질을 골고루 갖춘 자였고 주님께서 주목하신 다윗도 인상이 좋았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관찰되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고작해야 오십보 백보 혹은 도토리 키재기일 것입니다. 중심과 외모는 사람들의 눈으로 식별되는 구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는 구절이 중심과 외모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듯합니다.

이 구절에 근거하여 저는 하나님의 안목이 중심이고 사람의 안목이 외모라는 구분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안목은 그분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인간적인 눈길이 머문 인물들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택하지 않는 자"라고 잘라서 말합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을 모른다면 누구도 중심을 보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람을 보든 사물을 보든 역사를 보든 외모에 홀리는 일들이 즐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사이의 격차는 하늘과 땅처럼 물리적인 잣대로는 측량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막둥이 다윗의 은밀한 중심보다 장대한 엘리압의 준수한 외모에 더 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중심을 관통하지 못하고 고작 외모만 더듬어도 문제인 줄도 모르고 게의치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중심을 보고 하나님은 외모를 보신다는 역발상 불경도 서슴지를 않습니다.

중심을 주목하는 문화가 가정과 교회과 사회에 정착되는 것은 내가 보는 자로 머무는 한 결코 구현될 수 없습니다. 신적인 안목의 지속적인 수혈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성경으로 우리의 안구가 거듭나지 않으면 외모를 주목하는 악습은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안내하는 그 만큼 길게 보고 높게 보고 깊게 보고 넓게 보는 중심 바라보기 문화에 동역의 어깨를 모으고 싶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과 같습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겠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에 무서운 캄캄함이 드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목하는 그것을 주목하는 자가 있다면 그 가정과 교회와 사회는 공동체 전체가 밝아질 것입니다. 이처럼 안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의 안목을 유혹하는 현란한 외모를 과감히 외면하고 주님께서 보시는 그 중심을 함께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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