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5일 수요일

한병수의 설교관

1. 설교자는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의 말씀이라 한다면 교훈이든 명령이든 책망이든 어떤 것이든지 송이꿀과 같이 달콤하게 여기는 자여야만 한다. 그러면 최상의 친밀감 속에서만 읽어지는 그분의 깊고 오묘한 뜻이 성경의 갈피마다 쏟아지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진리의 부요함에 흠뻑 잠기지 않은 설교는 천사 수준의 아름다운 언사와 어법으로 전달한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설교도 사랑을 따라 구해야 할 항목이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 성경과 만물을 주셨지만 믿음의 선배들과 그들이 살면서 얻은 깨달음의 기록들도 남기셨다. 모든 역사의 모든 유력한 믿음의 사람들을 샅샅이 털어서 진리의 조각을 수집하고 체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성실함이 요구된다.

3. 그 진리의 조각을 단순히 한 인간이나 어떤 사건의 산물로 아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모든 진리의 조각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고 인간의 소유물일 수가 없다. 당연히 주님께로 소급하지 않고 인간문맥 안에서 구현된 정도의 의미에 머무르면 인간을 배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4. 주석도 읽고, 교의학도 읽고, 고백서도 읽고, 신조나 공의회 공문서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사전류도 참조하고, 서신도 보고, 설교문도 읽고, 신문이나 매거진도 읽고, 고전도 읽고, 시도 읽고, 역사서도 읽고, 소설도 읽되 그것에 휘둘리지 말고 진리가 드러나는 수단과 자료로 삼으시라. 

5. 설교자의 규격화에 반대한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걸맞은 진리의 아름다운 조각을 맡기신다. 그것을 잘 보존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설교자의 인격과 성향과 공부와 방식을 고정된 격자에 구겨 넣는다면 각각의 조각이 가지는 진리의 고유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엄있고 품위있고 고결하고 고귀하고 강력하고 향기롭고 유익하고 거룩하고 값진 진리를 굳이 누더기 언어로 옷입혀야 하겠는가! 할수만 있다면 진리의 표상에 걸맞은 가장 명료하고 아름답고 세련되고 적실한 표현을 찾고 습득하되 문학도가 될 각오로 모든 문헌들을 섭렵하는 노력까지 기울어야 한다. 거짓을 진리처럼 전달하는 것보다 진리를 마치 거짓인 것처럼 전달하는 것의 문제가 더 치명적인 것이라는 점은 면역학도 지지하는 바다. 

7. 일상의 중요성은 설교의 준비에도 빠져서는 아니되는 항목이다. 인간의 삶을 나 자신이 희로애락 빈부귀천 속에 뛰어들어 일체의 적응력을 터득하는 방식으로 읽어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라면 소통의 수단으로 확보하라. 그런데 일상보다 폭넓은 공유의 본좌가 또 있을까! 일상은 설교에 소통의 비중이 큰 만큼이나 중요하다. 

8. 무수히 많은 설교자의 사례들을 경험하고 그들의 다양한 장점들을 배우고 익히시라. 몇 가지 장점들을 일별해 본다면, 1) 표현이 탁월한 설교자, 2) 언어의 선택이 뛰어난 설교자, 3) 목소리의 높낮이 조절에 달인인 설교자, 4) 완급과 강약과 고조의 배합에 능숙한 설교자, 5) 메시지의 경중과 말의 속도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설교자, 6) 목소리의 음색이 좋은 설교자, 7) 적절한 모션을 취하는 설교자, 8) 질의응답 형식으로 적절히 청중과 소통하는 설교자, 9) 표정이 편하고 자연스런 설교자, 10) 청중과 눈을 맞추면서 전인격적 소통을 늘 시도하는 설교자, 11) 인격과 삶이 메시지와 다르지 않아서 당당한 설교자, 12) 내가 아니라 진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신을 가리는 설교자, 13) 협박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주장하는 어투가 아니라 설득하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말투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설교자, 14) 논문발표 수준으로 원고에 코를 박고 낭독하지 않고 청중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설교자 등이겠다. 

9. 우리는 설교의 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교부들을 비롯하여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설교 선배들의 본을 맹렬히 카피하되 나의 고유한 버전으로 정착될 때까지 진전하라. 물론 설교의 내용일 경우에는 출처를 밝히면서. 카피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학습의 최상급 원리이다.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온전한 스승 배끼기는 제자가 도달해야 할 학습의 정상이다. 

10. 카피의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을 높이라. 다시 말하지만 카피는 죄가 아니다. 우리는 일평생 진리를 카피하고 사람을 카피하고 자연을 카피하며 살아간다. 카피 자체보다 근본적인 설교자의 관심은 카피의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기준이 높을수록 카피할 사람이나 대상이 점점 없어진다. 결국 하나님의 진리 자체에 올인하게 된다. 그래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카피하게 되는 경지까지 나아간다. 주님의 사고방식, 표현방식, 행동양식 일체를 모방의 대상으로 삼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나의 사고와 표현과 행동에 고스란히 옮긴다. 그분을 카피하면 할수록 모든 영역에서 그분만이 드러난다.  

11. 설교는 월요일 준비해서 토요일 끝나는 단기간의 작업이 아니다. 일평생 증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삶 전체가 설교 준비이며 설교 자체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더 이상 고유한 내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선진들의 온갖 영향들이 뒤섞인 조합의 결정체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흠모하고 본받고 동행하고 동역하고 동거해 왔느냐가 완곡한 의미에서 이미 설교였고 설교의 준비였다. 

12. 당연히 삶의 모든 요소가 설교의 준비이며 설교 자체이다. 지극히 사소한 요소라도 그러하다. 설겆이도, 아이들과 노는 것도, 심지어 먹고 마시고 입고 겆고 앉고 눕고 자고 숨쉬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설교와 무관할 수 없는 것들이다. 

13. 증인과 설교자는 동의어다.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증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며 모든 것들이 설교의 입술을 벌리는 행위이다. 테크닉도 물론 무시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남녀노소 동서고금 불문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산다는 사실을 한시도 망각하지 않는 자여야 탁월한 설교자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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