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하나님께 반응하는 다윗

하나님께 반응하는 다윗 (삼하16:5-13)

상황: 다윗은 왕이지만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쫓기는 신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울 가문의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다윗과 그의 모든 신하들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주저했다.

시므이 저주의 내용: 1) 다윗은 사울 및 그의 족속들을 피흘리게 한 자다, 2) 벨리알의 사람이다, 3) 하나님이 압살롬의 손에 왕국을 넘기셨다. 즉 다윗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시므이의 변화(삼하19:19-20): 전에는 시므이가 다윗을 ‘피 흘린 자, 벨리알의 사람’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내 주여, 내 주 왕께서, 내 주 왕’이라 부르고, 본인을 ‘종, 왕의 종’으로 지칭한다.

시므이의 청원: 1) 자신에게 죄를 주지 말라; 2) 자신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말며 마음에 두지 말라; 3) 자신의 범죄한 것을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이스라엘(요셉의 온 족속) 중 가장 먼저 내려와 다윗 왕을 영접했다.

분석 1: 다윗은 사울을 죽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와 그의 족속의 피를 흘리게 하지도 않았다. 죽여도 마땅한 원수였고 죽일 기회도 있었으나 옷자락에 칼만 살짝 대었으며 그런 행위에 대해서도 심히 괴로운 마음으로 회개해야 했던 인물이 다윗이다. 이처럼 시므이의 저주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

분석2: 다윗이 돌던짐을 받았다. 과거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며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쳤던 용맹한 믿음의 소년이요 영웅의 모습을 보였던 것(삼상 17:43∼49)과는 극적으로 대조된다. 만감이 교차했을 듯하다. 원수를 넘어뜨린 돌이 이제는 저주와 조롱의 돌맹이가 되어 자신에게 날아왔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장대한 적장을 무찌르던 영웅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드는 자리에서 폐족의 찌끄러기 인물에 의해 터무니 없는 조롱을 당하고 있다. 참으로 깊은 회개의 상황이다.

분석 3: 시므이는 다윗을 벨리알의 사람이라 하였다. 한글 성경에는 “사악한 자”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단순한 사악함을 넘어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란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단어이다. 시므이는 기분이 몹시도 나쁠 언어만 골라서 다윗을 저주했다.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벨리알은 그리스도 예수와 나란히 대조되는 존재이다.

분석4: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칼로부터 도망치는 신세에 처하였다. 그러나 그 원인은 사울의 피를 흘려서가 아니다. 시므이의 진단은 엉터리다.

충복들의 반응: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라 하였다. 아비새의 눈에 시므이는 “죽은 개”였다. 아비새의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니었다.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을 언급하며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묶어서 아비새의 이해와 처신을 지적했다.

다윗의 반응: 1)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다. 2)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3)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감히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 힐문할 자가 없다. 4) 원통한 상황인 것을 다윗도 안다. 하나님이 감찰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이런 이해 속에서 시므이의 저주를 오히려 하나님의 선이 베풀어질 기회라고 생각한다. 5) 19장 22절: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사탄)가 되느냐?

의문: 어떻게 “죽은 개”로 간주되는 시므이의 저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하고, 충복들의 충성스런 반응은 “사탄”의 행위로 이해될 수 있는가? 다윗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하나님과 사탄이란 먼 원인들을 사려했다. 하나님 중심적인 이해와 처신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것과 결부되어 있다.

교훈: 1) 우리는 삶 속에서 너무도 가까운 원인들을 주목하고 거기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원수의 입술에서 저주가 쏟아져도 하나님의 명령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2) 이 땅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임을 인정해야 한다. 참으로 믿음의 선배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반응하며 살아갔다. 욥의 삶을 보면 그의 엄청난 고난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개입이 목격된다: 하나님, 사탄, 갈대아 사람, 대풍, 여호와의 불. 그러나 욥은 이 모든 사태를 이해할 때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 언사로 정리했다. 요셉도 참으로 끔찍한 형제들의 배신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가 애굽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허락 없이는 수족도 놀리지 못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어도 형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는 말로 사태의 전모를 이해하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아버지의 원대로 되어지는 일로 여기셨고 죽음의 쓴 잔을 자원하여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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