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묵상집 머리말

더 깊은 묵상을 고대하며: 누가 먼저 주께 드려 갚으심을 받겠느냐?

묵상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두렵고 떨리는 일이면서 놀랍고 황홀한 일입니다. 물론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측량을 불허하는 거룩의 무한한 격차 때문에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날마다 순간마다 대면하는 가장 안전하고 지속적인 방식을 주께서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소통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땅에서 어떤 조건을 구비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주께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면서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을 찢으셨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무시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만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 위에 임하셔서 당신의 백성과 소통을 하셨으며, 나중에는 말씀이신 주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친히 소통이 길이 되셨으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신 이후에는 기록으로 남기신 말씀을 성령의 증거와 믿음의 들음으로 수납하게 함으로써 지금도 소통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의 묵상은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던 지성소의 일입니다.

지성소 출입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위하여 휘장을 찢어주신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허락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 특권을 누리지 않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어쩌면 특권을 특권으로 알지 못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도 묵상의 깊이에 있어서는 여전히 초보의 어설픈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묵상이 지극히 영광스런 특권이며 지극히 감미로운 선물이며 하루라도 거르면 생존이 위태로운 지극히 기본적인 영혼의 끼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묵상을 했습니다. 주어지는 깨달음의 수효는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성실과 비례하여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가 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과의 무수한 반복 속에서도 그 새로운 깨달음의 샘은 좀처럼 마르지를 않습니다. 아침마다 그 신적인 성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묵상법에 있어서 처음에는 제 자신이 묵상의 그물망이 되어 자아 중심적인 깨달음을 건지고 그것을 축적하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묵상의 입맛이 바뀝니다. 묵상의 짬밥이 쌓일수록 교훈을 건지는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깨닫기를 원하시는 진리의 본질에 제가 참여하고 그 진리를 수납하는 식으로 말씀을 대하는 그런 묵상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주님의 주도성, 주님의 우선성, 주님의 기준성, 주님의 방향성, 주님의 방법론, 주님의 최종성이 인정되면 될수록 묵상은 깊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뒤집어서 본다면, 묵상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인자는 바로 제 자신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감은 클수록, 저의 존재감은 적을수록 묵상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는 더해지는 듯합니다.

묵상이 생각의 세계에 머물면 특유의 높은 휘발성 때문에 삽시간에 망각되고 말 것입니다. 흩어지기 전에 언어의 옷을 입히고 지면에 활자의 닻을 내려야 오래 보존될 수 있습니다. 묵상에서 나온 선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위탁된 것이기에 수령자는 청지기의 책임을 갖습니다. 위탁된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을 하다가 진리의 극미한 조각이라 할지라도 망각으로 인해 흩어짐을 면하고자 서둘러 조촐한 블로그에 활자의 체인으로 묶어두려 했습니다. 어느 새 분량이 두툼해 졌습니다. 저의 신학과 삶의 뼈대와 살쩜은 이러한 진리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맞추어진 결과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묵상의 나날 속에서 조금 익힌 어설픈 묵상법과 묵상의 초라한 배설물을 엮어서 책으로 낸다는 결정에 이르기까지는 몇 차례의 망설임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묵상집 출간은 제 사유의 꾸며지지 않은 민낯과 속살을 공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탄탄하고 정갈한 조직과 체계가 구비되기 이전에 한 신학자의 머리와 가슴에 나날이 고인 내용물을 주께서 베푸신 그대로 공유하는 것도 무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묵상집을 출간하게 된 것은 세움북스 강인구 대표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묵상은 저를 둘러싼 인간문맥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가족들과 동료들과 친구들과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의 사랑과 어울림이 없었다면 묵상의 내용들이 산출되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묵상의 궁극적인 주체요 대상이요 목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Soli Deo Gloria!

2014년 끝자락에 선 양평에서
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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