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어리석은 자와의 대화

어리석은 자와 같아지지 않도록 그의 우매함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지 말고, 어리석은 자가 자기의 눈에 지혜롭게 되지 않도록 그의 우매함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잠26:4-5).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이는 우매한 자에게 대답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가 뚜렷하지 않은 탓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말씀이 대답을 하라는 것과 말라는 것 사이의 양자택일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두 가지 모두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와 대화할 때에는 그가 설정한 논지와 논리의 우매한 프레임이 있습니다. 지혜자는 우리에게 그런 우해함을 따라 대답을 "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우매자와 같아지는 것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습니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지혜자는 대답을 "하라"는 말에 뒤이어 대답하지 "말라"고도 권합니다. 그러나 우매자가 자신의 기준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로 여기도록 방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매자와 그의 우매한 프레임이 싫다고 입을 다물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우매자가 소통할 수 없는 고매한 기준을 따라 대답하는 것은 그에게 대답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우매자의 논법을 따라 답하되 그 논법에 동화되는 것은  피하면서 우매자가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여기지는 않도록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매자의 기준을 따라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와 같아지지 않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반응이 우매자가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로 여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지혜자의 의도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대답하지 않는 것은 지혜일 것입니다.

어떠한 행위 자체가 지혜를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매한 자와 소통할 때에 그의 우매함을 따라 대답을 하고 안하고가 지혜인 것은 방향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우매하게 되는 방향과 우매자가 스스로를 지혜자로 여기는 방향을 피하는 반응이 지혜일 것입니다.

대답을 하고 안하고의 목적과 방향은 어리석은 자와 같아지지 않으면서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로 여기는 도취에 빠지지는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매함을 멀리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나 우매자의 자아도취 방지만을 추구하는 반응은 다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추구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어법을 존중함이 이 사안에 대해서도 최고의 지혜인 것 같습니다. 비록 생뚱맞은 비약으로 보이지만 전체를 조망하면 잠언의 키워드인 여호와 경외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포획하는 비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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