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7일 금요일

무해석 묵상의 묘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해석에 관여하는 몸의 기능들이 급하게 작동한다. 묵상은 해석을 지향한다. 이의가 없다. 그러나 해석 일변도의 묵상은 다분히 지성적인 요소의 과장일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날에는 성경을 묵상하며 해석 모드를 해제하는 경우가 있다. 묵상하며 말씀의 있는 그대로에 인간의 어떠한 생각도 섞지 않으려고 그냥 말씀 그대로가 남도록 하는 경우이다. 이는 무해석 묵상론을 두둔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의 우를 범하지 않고 저자의 본래적인 의도에 이르려는 엄격한 자기부인 독법의 추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미에 있어서나 가치에 있어서나 권위에 있어서나 인간의 어떠한 가감도 불허하는 최적과 최고의 계시이다. 이 땅에서 주어질 수 있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이다. 양념을 치고 기교를 부리고 요리를 해서 더 좋아지는 무엇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료가 아니다. 그 자체로 최종적인 요리이다. 이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먹는 자가 지혜로운 이유이다.

꼼꼼한 논리적 분석력과 깔끔한 정리력과 화려한 수사력이 없더라도 묵상에는 큰 지장이 없다. 물론 말씀을 맡은 교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방위적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묵상이 누군가를 가르칠 꺼리 마련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선명한 거울에 비추고 성찰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라면 묵상은 모두에게 열린 광장이다.

그러나 검증된 방법론의 동원 없이도 능숙하게 묵상의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실력자는 오늘날 희귀하다. 몽학선생 정도의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묵상의 깊은 세계를 출입하는 분들의 노하우는 유용하다. 그러나 외부에서 짜준 틀 속에서의 묵상은 묵상의 최종적인 경지는 아니기에 형언할 수 없는 독생자의 영광이 읽어질 때까지 진전해야 한다.

오늘은 해석모드 해제의 맛이 유난히도 달콤했다. 말씀으로 만나는 하나님 자신이 묵상의 백미라는 결론으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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