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8일 토요일

한규삼 목사님의 바울 4차 전도여행

1. 2006년부터 지금까지 준비한 주제이다. 바울은 어디까지 전도하고 싶었는가.

2. 고르틴 (바울이 전도여행 한 장소를 다 방문하고 싶었다. 그 중에 Crete의 고르틴이 있다)

3. 바울이 로마에서 풀려난 시점, 60년...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5년동안 사역했다. 마지막 5년이라 하겠고 4차 전도여행이라 부르게 된다.

4. 그레데에 간 디도에게 쓴 서신이 디도서다. 5절에 보면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게 한 이유가 나온다. (그레데에 많은 가정교회 있었다.) 모든 타운에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바울과 디도가 그레데를 선교했다. 디도는 남겨두고 바울은 지속적인 선교의 여정을 떠났다. 디도서에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남긴다.

5. 디도서 3장 12절,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6. 장로를 세우고 교회를 조직하라. 아데마와 두기고를 보낼테니 너는 나와 함께 니고볼리 접선 후 선교하자. 이런 문맥이다. 바울과 디도가 그레데 선교할 때에 평소의 선교전략 대로 중심지에 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즉 그레데의 중심도시 "고르틴"에 갔을 것이다. 4세기 디도를 기념하는 교회가 그곳에 세워짐. 유적으로 남음. 옆에 음악당이 있다. 음악당이 있었던 도시라는 것, 즉 보통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이곳에 갔었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해안가가 아니라 섬 중앙에 있다는 것이다. 그레데의 최대 도시는 항구에 있어야 마땅한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바다와 강에 연결되지 않은 대도시는 거의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고르틴은 제주도 같은 섬인데 도시의 위치가 중앙에 있다.

7. 굉장히 발달된 도시였다. 그리스 정교가 그들의 종교이다. 고고학적 발굴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디도 기념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굴하고 있었다. 그레데 대학 고전학과 교수와 팀들이다. 발굴하는 교회가 너무도 컸다. 정말 재미있는 도시였다. 로마의 기본적인 역사를 그 교수가 가르쳤다. 어떻게 로마가 그레데를 다스렸는가? 로마에게 그레데는 너무도 중요하다. 지중해를 둘러싼 정복지에 망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아무리 적었어도 50만명, 거의 100만으로 추정한다. 당시 로마 근교까지 합해도 100만 정도가 살았었다. 그레데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고르틴이 섬의 중앙에 위치한 이유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기 위해 섬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해안까지 이어지는 도시일 필요가 있어서다.

8. 니고볼리에서 만나자고 디도서를 바울이 디도에게 썼다. 3장 13절을 보라. 세나와 아볼로를 먼저 보낸다고 한다. 디도서를 들고 간 사람일 것이다. 세나는 율법교사이다. 랍비가 아니라 변호사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레데를 거쳐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뱃길, 고린도, 그레데,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이 중요한 뱃길이다. 그레데에서 새로운 물자를 공급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9. 어떻게 서포트를 받았는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의 역할, 어디에서 물자를 공급 받았는가? 이것도 살펴보아야 한다. 순회 설교자, 요한 1-3서에 나오는 것, 이들을 돕고자 하는 문화가 있었다.

10. 바울은 디도를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 에베소에 들렀거나 스쳤을 가능성이 높다. 딤전1장을 보라.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에베소를 스치면서 디모데를 남겼을 것 같다. 마게도냐 일이 급해서 그렇게 한 듯하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에서 만나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지키려고 에베소를 그냥 스친 것인지 모르겠다.

11. 로마감옥 출옥 이후에 60에서 바울은 어떤 사역을 했는가? 바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레데에 가서 선교한 것, 그곳에 디도를 남긴 것, 그리고 에베소로 가서 디모데를 남기고 마게도냐로 간 것. 이런 행적을 추적하려 함이다.

12. 디모데가 어리지만 바울이 함께할 수 없어서 그에게 목회의 지침을 제공할 의도로 쓴 서신이 디모데서 되시겠다. 1:5절을 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여기서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과 결부되어 있다. 사랑이 핵심이다. 사랑의 출처가 본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13. 바울은 마게도냐 갔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했다' '했을 것이라'는 정황이 성경에 나온다. 1) 서바나에 가야 하겠다는 말이 있다. 왜? 내가 스페인에 가는 것을 로마 교회가 비용을 지급하라. 스페인 사역을 너희가 품으라는 언질이다. 그래서 스페인에 갔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특별히 바울은 하고자 한 것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다. 스페인에 간 결과가 남아있지 않다. 유적적으로, 기록적으로 남아 있는 결과가 없어서 아쉽다. 2) 빌레몬서, 내가 너에게 가겠다고 하였다. 빌레몬이 있는 골로새도 바울이 갔을 것이지만 성경에 나오지는 않는다. 한다면 하는 바울의 성정상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딤후, 순교하기 직전에 썼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서신이다. 디모데는 당시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다. 딤후4:9-14: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즉 에베소에서 로마로 오라는 이야기다.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한다. 자기 주변에 있었던 데마, 그레스게, 디도를 언급한다. 바울을 등지고 떠났다고 한다. 데마는 떠났고 나머지 두명은 파송했다. 3명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곁에 지금 누가만 있다. 그러니까 디모데를 향해 마가까지 데리고 오라고 한다.

14. 아데마를 에베소로 보내어 디모데를 대신하게 했다. 당시 마가는 골로새에 있었을 것 같다. 바울은 그 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초대교회 정황이 잡힌다.

15. 에베소에서 로마로 오는 것은 드로아를 거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바울이 선교여행 시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바울이 가장 자주 방문한 지역일 것이다. 드로아 거쳐서 오라는 기록이 있다.

16. 니고볼리, 어떤 장소인가? 폐허가 된 도시이다. 그곳에 갔다. 로마의 역사에는 기본인데 신학 학자에겐 무지하다. 니고볼리, 승리의 도시이다. 옥타비아누스,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를 물리침. 악티움이 니고볼리다. 악티움 해전 후 로마의 폐권을 장악한 기념으로 새운 도시이다. 주요 항구로 사용했다. 브린디시, 로마의 중요한 항구이다. 길이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린 압비아가드. 다라키움, 에그네시아, 당시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길이 시작된다. 로마의 가장 중요한길, 브린디시, 다라키움 길이다. 다음으로 갈 곳이 니고볼리다. 바울은 디도에게 니고볼리로 와라고 했다. 겨울내내 준비하자. 무엇을? 앞으로 로마에 가서 해야 할 일의 전략을 짜자고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이 선택한 헬라어 단어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니고볼리 전도에 들어간다.

17. 바울은 그리스 동쪽만 전도했다. 서쪽은 안하였다. 서쪽선교 거점으로 니고볼리로 삼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일루리곤, 3차때 전도했던 곳이다.

18.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 딤후,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한다. 니골볼리가 포함된 지역 전체를 달마디아라고 한다. 바울이 마지막 순교 이전에 디도를 다시 달마디아 지역으로 보냈다. 그리스 서쪽 지역을 전도하기 위해서다. 마지막 5년동안 마음의 의도는, 기존의 선교지를 돌아보고 선교하지 않은 지역을 선교하기 위해 전략적 매진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바울은 마지막에 그레스게, 디도를 마무리 하지 못한 선교 불모지로 파송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다고 한다. 갈라디아, 많은 어원을 가진 말이다. 갈라디아, 갈리아로 쓰이기도 한다. 그레스게를 보낸 갈라디아는 이탈리아 북쪽으로 가면 남프랑스 쪽인데 프랑스 선교를 위해 그곳으로 보냈을 것이다.

19. 바울이 로마감옥 이후에 1) 먼저 스페인에 갔을 것이다. 스페인 중에서도 타라고나 혹은 카디즈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선교가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코르도바, 카디즈, 타라고나 200년 말경에 순교자가 많이 나온다. 다른 바울의 선교지, 부흥이 일어났다. 곧 박해가 일어나 가정으로 지하로 내려간다. 기간이 지나서 다시 핍박이 가해지는데 순교가 일어난다. 10명의 순교 이야기가 나온다. 빌립보에도 있다. 개척한 교회는 박해를 받아 지하로 들어간다. 약 200년 보존되다 그 이후에 순교자가 나오고 순교의 피가 흐른 이후에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에 지상으로 올라와 엄청난 부흥이 이어진다. 니케아 종교회의 때 초대된 교회들 보면 200년대 후반에 순교자를 낸 교회들이다. 부흥의 증거이다. 니고볼리/빌립보/그레데/고르틴 등지에도 증거되고 있다. 바울이 스페인에 갔다는 증거는 순교자의 유무에서 확인된다.

20. 바울이 스페인에 간 것은 2년 정도일 것이라 추정된다. 제롬 코너, 왜 바울이 스페인에서 성공하지 못하였나? 여전히 스페니쉬 사용하는 곳이어서 바울은 언어적 장벽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21. 로마에서 압비아, 아우올리아, 오스티아 가는 길이 가장 유명한 경로이다. 오스티아 항구에서 스페인에 갈 때 클레멘트와 작별했다는 기록이 클레멘트 서신에 나온다.

22. 마게도냐로 가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쓴 것이 1서. 고린도에서 디도를 불렀다. 니고볼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니고볼리에서 디도와 함께 있다가 브린디시에서 로마로 들어가서 순교한다. 이것이 한규삼 목사님의 추정이다.

23.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부른 바울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바울은 에베소로 직접 가지 않았을까? 당시 배가 에베소로 가지 않고 밀레도로 갔다.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이다. 밀레도와 에베소 사이. 밀레도에 벌거 없다. 그러나 옛 밀레도를 알고 싶다면 베를린에 가면 된다. 베를린의 버가모 박물관, 버가모 지역을 발굴하며 중요한 것을 다 갔다 놓았다. 그들은 밀레도도 연구했다. 밀레도의 중요 유적들은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단의 재단도 몽땅 베를린으로 갔다. 1/3은 우리가, 1/3은 남긴다는 게 고고학 발굴의 계약인데 중요한 것만 가져갔다. 프랑스/베를린/영국 박물관에 중요한 것은 다 있다.

24. 베를린에 가서 밀레도의 복원된 것을 보면, 상상할 수 없도록 멋지다. 바울이 왜 에베소에 가지 않았을까? 1) 밀레도 항구 이용이 용이했다. 2) 당시 에베소 항구는 수리 중이었다. 에베소 항구는 정말 멋지다. 밀레도에 누구를 떨어뜨려 놓았는가? 딤후4:2, 드로비모는 병들어 밀레도에 두었다고 한다. 고린도로 오다가 에라스도 두고 니고볼리 갔다가 로마로 갔다는 이야기다. 밀레도 항구는 에베소 항구 다음으로 컸다.

25. 왜 바울이 고린도에서 디도서를 썼을까? 딤후 단서도 있고, 고린도가 고르틴을 통해 알렉산드리아로 연결하는 통로이다. 외경 중에, Acts of Paul. 필독서다. 여기에 바울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머리가 까졌고 일자눈섭, 키가 작고, 눈이 부리부리 했고, 어떻게 보면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천사같다. 영성은 뛰어난데 외모는 아니다. 이런 얘기들이 외경에 나온다. 2세기의 자료이다. 참고하라. 바울행전, 선교할 부분을 사도행전에 안나오는 것들이 등장한다. 소설이 아니다. 떼클라, 여성 리더십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이 세례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고린도에서 로마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뱃길을 주목하라, 고린도, 브린디시, 육로로 이어진다. 압비아가 나온다. 베드로가 압비아로 도망갔다. 압비가가도, 베드로에게 나온 꾸오바디스 이야기. 바울행전: 바울이 고린도를 거쳐 로마로 갈 때 베드로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순교할 것을 환상으로 보여줌. 바울이 순교할 때, 동편을 향해 기도하고 길게 목을 늘이는 순간 목을 쳤는데 하얀 피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경은 아니다. 흥미있게 외경 차원에서 읽어보라.

26. 바울의 마지막 5년: 1) 바울의 마음에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울은 충실하게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했다. 그의 마음에 자기가 아는 모든 세계가 선교의 대상이다. 그리스와 터키 서쪽, 그리스와 로마. 지도를 보라. 사도행전 19장에 두란노 서원이 나온다. 선교사로 나갈 분들에게 중요한 텍스트다. 그곳에서 이틀을 가르치매 아시아 전체가 복음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시아 전체를 선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루스드라 더베 등이다. 소아시아 전체를 선교한 자들은 두란노 서원에 모인 서생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흩어져 전도한 것이다. 바울 밑에서 누란노 서생들이 소아시아 선교의 주역이라 추정한다. 행19장, 두란노 서생들이 소아시아 전역을 선교했다. 달마디아, 일루리곤, 니고볼리 지역을 나중에 바울이 선교했다. 로마, 스페인, 아우올리아로 올라가면 남프랑스 지역을 거쳐 리옹까지 갔을 것이다. 자기의 제자 그레스게를 남쪽 프랑스 갈리아로 보냈을 것이다.

27. 그림을 좋아한다. 렘브란트, 벤 고흐. 아를 지역. 리용을 가기 전의 도시이다. 지금 마르세이유가 있다. 아를이 중요하다. 르혼강 가에 있다. 아른의 박물관에 갔다. 고호의 카페 테라스 엣 나잇(cafe teras at night)에 나오는 길이 바로 아우레이아 길이다. 로마 카르도다. 글미에 나오는 돌들은 로마시대 2000년 전에 깔린 돌이다. 아마도 이 길을 거쳐서 남프랑스에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28. 오늘의 교훈 1) 바울이 가진 원대한 계획,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리라. 땅끝은 스페인. 바울의 머리에 그려져 있는 세계 전체를 품으로는 꿈과 뜻.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2) 바울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사람에게 이리오라 하면 오고 저리가라 하면 가는 권위의 사람인데 어떤 분이길래 그런가? 바울이 돈을 많은 줄 안다. 따라 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짐작한 것이다. 어떤 리더십 때문에, 이 리더십의 출처는 어디인가? 바울의 리더십은 자기가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기고 복음만 섬기니까 사람들이 붙은 거다. 바울을 움직이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사단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과 나라를 중심으로 뭉치는 리더십과 연합이 아름답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메이지 않는다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리더십.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매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바울선교 팀의 규모는 마지막에 100명 정도였을 것이다. 3) 바울이 디모데와 마가를 자신에게 부른다. 로마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순교한다. 순교의 시간은 67년 말경이다. 이유는? 네로가 1년동안 외유를 한다. 밖에 나갔다. 네로가 밖에 있다가 돌아온 시기이다. 네로 자신도 68년 이후로 실각하기 때문이다. 바울을 죽일 수 있는 시기는 얼마 안된다. 67년 12월 경에 바울을 참수했을 것이다. 마가에게 복음을 전수했을 것이다. 바울, 본인의 선교를 통해 터득한 하나님의 진리를 마가에게 전수했을 것이다. 마가의 변화, 신약 전체 속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 바울, 베드로, 요한, 그리고 마가 순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바나바다. 마가의 변화. 바울은 마가와 디모데와 같은 차세대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하고 인생을 마감했다. 니고볼리, 바울이 그곳에 갔을 때에 네로도 그곳에 있었지 않았을까. 네로는 올림픽에 참석하여 놀고 있고 바울은 마지막 선교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묘한 아이러니. 바울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의 사역도 지역이 넓게 펼쳐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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