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4일 화요일

주님께만 범죄한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시51:4)

다윗은 자신을 주님께만 범죄하는 자로 의식하면 살아가신 분입니다. 이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책임과 무관심의 정당화가 아닙니다. 자신을 낳은 어미가 죄 중에 잉태했고 죄 중에 출생한 다윗은 죄의식이 다른 누구보다 더 강했던 분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죄론이 하나님만 그 대상으로 삼았다면 그의 사회성 결여 혹은 법의식의 불균형을 의심하는 것보다 다윗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고백을 했는가에 탐구의 시선을 돌리는 것 더 좋을 듯합니다.

세상에서 약하고 가난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은 무시를 당합니다. 신원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투자'하고 '관리'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탓입니다.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돈도 없고 인맥도 허약한 사람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교제의 악수를 청할 사람들이 주변에 없습니다. 마음 편하게 속사정을 쏟아낼 소통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문턱을 출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법과 경제라는 대응의 수단이 없는 분들에게 죄를 지어도 그것에 상응하는 형벌이 주어질 리가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구 횡포를 부립니다. 이러한 심리는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다르지가 않습니다. 땅에서의 수단을 장악한 자들의 안중에는 하나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자기들만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백성들을 돌보라고 맡기신 재능과 재물과 권력을 사리사욕 챙기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을 늘 의식하며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모두 주님께만 지은 죄라는 놀라운 경건의 기본기를 가진 종입니다. 비록 꿈틀거릴 저항의 힘이 제로인 약자와 빈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 지은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죄를 짓는다는 다윗의 의식보다 지금의 교회에 더 긴급하게 요청되는 태도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정죄의 손가락을 겨누는 죄인에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들키지 않은 죄라도 그 죄는 하나님께 지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합의를 따라 죄가 아니라고 세탁된 죄도 여전히 하나님께 저지른 죄입니다. 죄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한 일입니다. 죄의 유무도 하나님께 달렸고 죄의 경중도 하나님이 죄의 대상이란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법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러한 하늘의 법의식과 죄개념이 최소한 교회 안에서는 견고한 문화처럼 뿌리가 박히면 좋을 듯합니다. 공동체 단위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의식을 전념시킬 개인들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면 참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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