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0일 금요일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단2:21)

폐하고 세우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에 있어서도 세워질 때와 폐하여질 때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국가이든 개인이든 흥망의 이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이차적인 대상이나 원인에게 분풀이를 가합니다. 그러나 분풀이가 무분별한 것은 아닙니다. 온갖 부정과 불법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저히 침묵할 수 없고 하루종일 울분의 주먹을 거머쥐고 살아가야 할 정도의 몰상식과 몰염치와 몰지각이 사회에 너무나도 편만해서 그것들을 피해 눈길을 다른 곳에 두고자 할지라도 한 줌의 지면도 찾지 못하는 현실의 비애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 그분께만 반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지각에 걸러지는 악의 사슬이 전부가 아닙니다. 범우주적 규모의 악이 고려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빙거로 사회에 대한 우리의 나태과 무관심을 정당화 한다거나 다른 기독인의 그런 자세를 방조하고 나아가 두둔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도덕법은 단순한 윤리의 강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드러내고 나라가 임하고 그의 형상을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는 것과 관계된 고차원적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가치관의 진동과 거룩한 혼란을 초래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력의 통로로 쓰이도록 사회에 관여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나 개인이 사회적인 발언과 참여가 가져올 유불리에 기초해서 육신의 몸을 사리는 이기적인 처신에 민첩함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열매맺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도 개념적 차원에서 각 진영의 문법으로 가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가공된 개념을 가지고 서로 정죄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국가의 심장부를 쥐락펴락 한다면 그건 대한민국 교회와 국민에 대한 신적인 징계의 성격이 강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들을 마치 보의 물과 같이 임의로 다스리며, 그분만이 왕들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이시며, 깊고 은밀한 일을 드러내고 어두운 데 있어도 아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런 반응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무르짖을 수 있습니다. 어떤 왕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깊고 은밀한 것을 드러내서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구할 바까지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믿음의 분량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유와 평등이란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분신도 마다하지 않는 열심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통로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발휘해야 할 가치와 향기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더 높고 탁월한데 그에 부응하는 우리의 삶은 너무도 미진한 듯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반응한 오늘의 다니엘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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