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0일 일요일

영혼의 주림은 없다!

주는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신다 (잠10:3)

이 구절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눈물이다. 대체로 언어의 형태로 끄집어낼 수 없는 사연의 배설에는 눈물이 최적의 출구이다. 오늘은 뭔가 깨닫기는 했는데 적합한 언표를 찾아내지 못하여 눈물이 광대뼈 위로 미끄러 졌나보다. 암튼 비에 씻긴 하늘처럼 영혼은 개운하다.

위의 인용문은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는 기근은 있어도 영혼의 배고픔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지혜자의 단언이다. 그런데도 영혼이 주림으로 신음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무엇보다 주께서 말씀만 하시고서 정작 영혼의 공복을 책임지지 않으신 것이라는 해석은 금물이다. 주님은 어느 때에나 무흠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인격과 삶이 의에 역주행을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봄이 더 타당한 반응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고 뭔가 교훈을 산출하려 해도 머리와 마음에 재료가 바닥난 영적 궁핍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나의 불의한 삶을 성찰하게 된다.

사실 위장의 기근은 즉각 감지된다. 그러나 영혼의 주림은 한참을 지나서도 감지되지 않아 영적 기갈이 무의식의 상태로 지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지한 것 자체가 은혜라는 이야기다. 영적 빈곤과 기갈의 인식은 영적 풍요와 윤택으로 우리를 초청하는 방식이다. 아직도 한국은 주님의 은혜가 여기저기 감지되고 있어 기회의 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영혼의 주린 상태를 알고서도 영혼의 양식에 묵상의 숟가락 들어 올리기를 못마땅해 하거나 게을리 한다면 주님의 자비로운 초청도 묵살하는 무례가 아니겠나! 어떤 사람들은 몸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각종 과일이나 야채가 땅긴단다. 생리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영적 영양분의 부족에는 왜 이리도 무신경한 것일까!

주님은 분명 우리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영적 영양분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무수한 종류의 자극을 무시로 동원하는 분이시다. 나 자신의 기호를 보아도 그렇고, 친구들의 소식을 들어도 그렇고, 나라의 향방을 주목해도 그렇고, 교회의 상태를 보더라도 그 필요성이 수시로 감지된다.

특별히 교회의 무기력한 상태와 불의한 모습을 보면, 영혼의 심각한 빈곤이 교회의 광범위한 실태라는 사실이 뼈져리게 느껴진다. 주께서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어도 교회가 이렇게 진리의 핍절로 허덕이고 있다면 교회의 불의를 돌아봄이 마땅하다.

나아가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돌아가는 꼬라지, 비참의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창궐을 보면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인 교회가 각성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진동시킬 진리의 깊은 경지를 추구하고 수혈하지 않는다면 영적 주림에 대한 신경과 감각의 심각한 마비를 의심해야 된다. 부에 대한 교회의 맹목적인 집착과 하늘을 찌를듯한 오만도 심히 의심된다.

악인의 소욕은 좌절시킬 것이라는 뒷부분 구절이 돌이키지 않는 우리의 교회에 적용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눈물에 녹은 하나의 사연이라 생각된다. 주여, 건물과 재정은 무너져도 말씀하신 대로 교회의 영혼만은 주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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