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7일 목요일

약할 때 강함이라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바울이 받은 계시는 지극히 컸다. 이는 그의 정교한 저술들만 봐도 확인된다. 이처럼 자랑의 꺼리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단다. 이는 약함과 강함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주님의 역설적인 가르침 때문이다.

지극히 큰 여러 계시로 자만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육체에 자만 억제용 가시 곧 사단의 사신을 보내셨을 때였다. 떠나가게 하려고 주님께 세번이나 구했으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교훈이 주어졌다.

일평생 바울을 괴롭히고 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가시가 바울에게 준 교훈은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바울에게 "약함"은 교훈을 목적으로 한 일회성 수단이 아니었다. 자신의 약함을 "큰 기쁨으로" 일평생 자랑한 것이 그 증거이다.

바울의 해괴한 처신,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우리의 약함과 그리스도 예수의 강함이 어떻게 서로 상응하고 동시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감의 경험이 없어서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문득 그런 경험이 급습했다. 말씀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약할 때 말씀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반면 우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진리의 말씀은 그만큼 가소롭게 여겨진다. 말씀과 우리 사이에 이런 힘의 기묘한 반비례가 있는 줄 예전에는 그리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약해지면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한다. 눈이 약하신 분들은 귀가 밝으시고 귀가 어두우신 분은 눈의 관찰이 예리하다. 우리에게 어떤 약함의 가시가 있으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신경이 자극된다. 평범하던 말씀도 천지를 진동하는 진리임을 감지하게 된다.

일평생 바뀔 기미도 보이지 않는 연약함을 내 안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주님께 원망을 쏟고 한탄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사도에게 배운다. 비록 영혼을 찌르는 뾰족한 가시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높아지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말이다.

연약함이 발견될 때마다 어떠한 말씀이 나에게 위력을 발휘하고 꿀보다 달콤한 진리의 어떠한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인지를 기대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이든 건강이든 가정의 문제이든 모두가 우리로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여 마련하신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 날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연약함 속에서 강하게 발휘되는 말씀의 위력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면하고 싶다.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항구적인 문제의 삽바를 하루종일 거머쥐고 씨름하는 분들이 적지 아니하다.

바울은 "큰 기쁨으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다. 주님의 강함이 거기에서 온전하여 지기 때문이다. 자아의 지경을 넓혀 공동체로 여기고 나 자신을 그 몸의 한 지체로 여긴다면 해결되지 않는 교회의 문제도 주님의 강함이 발휘되는 출구라는 이유로 감사할 수 있겠다.

주변에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더라도 그런 확대된 연약함 속에서 발휘되는 주님의 강함을 큰 기쁨으로 향유하는 믿음의 거인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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