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원수사랑 훈련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눅6:27)

원수는 정신적, 금전적, 물리적, 신체적 피해를 유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자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명하신다. 주님의 말씀이니 반박할 수야 없겠으나 마음의 진실한 수긍에는 이르지 못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터무니가 없어서 믿는 터툴리안 신앙(credo quia absurdum)과 이해하기 위해 믿는 어거스틴 신앙(crede ut intellegas)을 고수하려 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가 나에게 끼치는 모든 피해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우리의 몸이 원수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면 원수사랑 행위로 증거하는 가치의 크기는 우리의 삶과 생명도 능가하는 것이겠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면 생명보다 귀한 것을 이 세상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땅에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 전부라고 알고 있다면, 원수가 나에게서 빼앗고자 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그 가치를 위해서는 나의 목숨조차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내려놓을 수 없다면, 엄밀한 의미의 원수사랑 가능성은 없어진다.

땅에서 주어지는 것 이상의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것이 나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판단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원수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까지 포함한 자기부인 없이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고 내 생명보다 소중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란 사실을 몰라도 그러하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란 사실 즉 땅에서는 도무지 제공되지 않는 하늘의 진리가 선포되고 그 진리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명하셨다. 그렇게 앞서 살아가신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그런 원수사랑 실천으로 그 향기가 발산된다.

원수사랑, 나의 인격과 삶과 신앙의 바로미터 같다. 원수사랑 상황에 직면하면 곧장 들려 올라가는 나의 본성적인 가벼움을 때때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원수사랑 훈련은 일평생 지속될 전망이다. 마귀와 죄 이외에 다른 어떤 대상도 원수의 항목에 남아나지 말아야 하니까 마지막 호흡을 내뱉는 순간까지 그 훈련이 중단될 수 없어서다.

훈련의 강도를 기준으로 본 순서대로 자아에서, 가정에서, 회사에서, 교회에서, 국가에서, 모든 나라에서 범사에 동시에 진행되는 듯하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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