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일을 감추시는 하나님의 영광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91:14)

하나님의 어법은 대체로 이러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높인다는 인과적인 어법 말이다. 이런 어법에 따르면 마치 구원과 높임의 근거가 우리에게 있고 원인은 우리의 선행적인 공로에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상태와 실행을 촉구한다.

그러나 성경의 전반적인 뉘앙스는 하나님은 언제나 앞서 행하시고 먼저 이루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주님께서 먼저 당신을 계시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이름을 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마련하신 식탁에 그냥 숟가락만 얹으라는 뉘앙스다. 복음의 정수가 늘 그렇듯이.

그런데도 주님께서 늘 우리의 상태와 행실을 보시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 주신다는 방식에는 여전히 해석학적 오해나 오용이 기웃거릴 여지가 남는다. 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결부된 사안이다. 인간의 자유는 모든 공로와 영광이 인간에게 돌려져야 할 근거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명토박아 두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셨고 그렇게 하셨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지극히 큰 상급으로 주시었다. 그런데 단순히 주시는 선물의 지고한 가치의 소유권만 넘겨지는 식으로 주시지를 않으셨다. 주시는 방식에 있어서도 최고의 선물에 상응하는 자발적 주체로서 자유로운 능동의 손을 뻗어 취하는 방식이다.

자유는 인간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가장 지고한 가치의 선물을 취하는 신비로운 형식이다. 수혜자 편에서는 가장 깊고 고급한 감사가 산출되는 틀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을 앞서 행하시고 모든 것을 주시되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시고 주셨는데 왼손의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심으로 일을 감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깊이 증거된다.

선물의 질도 경이롭고 주시는 방식도 신비롭다. 멋쟁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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