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침묵은 무덤이다

주께서 내게 침묵을 지키시면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 것입니다 (시28:1)

이는 말씀의 공급이 없으면, 즉 영생의 말씀이 영혼의 혈관에 한 찰나라도 수혈되지 않으면 살았으나 무덤에 머무는 자와 일반이란 얘기겠다. 시어가 절박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 영혼에 송이꿀 이상의 달콤함만 선사하는 혹은 긴급한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 아니라 영혼의 생계를 좌우하는 본식이다. 먹으면 살고 끊으면 죽는다.

금식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생을 좌우하지 못한다는 결연한 고백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귀의 금식보다 무서운 경고는 없을 것이다. 사선을 넘나들고 무덤을 출입하는 듯한 심경이 다윗의 시어에서 읽어진다.

침묵은 나에게 생명이요 소망이요 기쁨이요 반석이요 전부이신 주님과의 단절, 나에게 어떠한 것도 어떠한 가치도 어떠한 의미도 어떠한 미래도 소멸되고 말 단절의 경고와 같다. 다른 시편에서 다윗은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심판의 칼을 가시고 징계의 활을 당기실 것이라고 하였다. 경고든 꾸중이든 책망이든 말씀이 있는 동안에는 안심이다.

그러나 침묵이 시작되면 사태의 영적 움직임이 감지되지 아니한다. 이는 하나님의 침묵이 무덤을 방불하는 이유겠다. 그의 입김으로 생령이 된 우리에게 침묵보다 큰 공포는 없다. 주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면, 성경을 펼쳐도, 기도의 무릎을 꿇어도, 선행의 몸부림을 시도해도, 파수꾼의 경성도 허사로다. 코에 호흡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을 뻗어도 헛수고다.

그런데 누구도 앗아가지 못하는 소망이 있다. 예수님의 유언이다. 말씀이신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떠나시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약속 말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침묵은 없다는 이야기다. 회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는 일시적인 침묵, 그로 인한 영적 신경의 마비, 그래서 소통의 단절이 가져오는 극도의 영적 답답함은 있어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우리들 중에는 때때로 침묵의 캄캄한 무덤에 머무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절망과 좌절은 아직 이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입술이 있어서다. 하나님은 기록된 당신의 말씀을 회수하진 않으신다. 말씀의 삽바를 거머쥐고 은혜 베푸실 때까지 씨름하면 된다. 영혼의 밑바닦에 박힌 죄악의 군살을 기억으로 긁어내고 회개하면 된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다.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거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그리고는 기다리는 거다. 주께서 침묵을 중단하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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