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하나님의 완전함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행17:25)

오히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라고 바울은 기록한다. 그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을 말하였을 때에도 영광의 부족분 해소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되돌려 달라는 독촉이나 본전을 찾으시는 자본주의 경영인의 이미지를 주님께 씌우고자 함이 아니었다.

투자와 관리와 회수라는 경영의 순환고리 형식에 익숙한 우리의 머리에서 돌아가는 지식의 인과율적 회로로 걸러지지 않는 사도의 의도에는 하나님의 완전함과 인간의 의존성 확인만이 아니라 이러한 속성의 대조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완전함에 가까이 오라는 초청의 성격까지 포괄되어 있어 보인다.

하나님은 진실로 인간의 어떠한 보충도 요구하지 않는 분이시다. 즉 영광이나 속성이나 기쁨이나 만족이나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은 외부의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도 첨삭되지 않는 분이시다.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온 우주가, 온 인류가 없었어도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의존성은 하나님의 이러한 완전성과 상반된다. 생명과 호흡과 만물이 주어지지 않으면 존재도 삶도 활동도 중단되는 전적인 하나님 의존성이 인간의 대표적인 속성이란 이야기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의 철저한 의존성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서는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과 인간의 전적인 의존성 대조가 가진 의미의 반쪽이다. 의미의 다른 반쪽은 주님께서 생명과 호흡과 만물에 의존하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완전성에 이르도록 초청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즉 온 세상과 온 인류가 없이도 하나님은 어떠한 부족함도 없이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온 세상의 만물이 사라져도 여전히 기뻐하고 만족하고 행복하고 완전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높은 가치의 삶으로 초청하길 원하시고 계신지가 도무지 측량할 수도 형설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그런 초청의 자리가 있다.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려는 생각일랑 아예 접으시라. 오히려 모든 것들이 거절되고 차단되고 생략되고 박탈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만족과 행복과 기쁨과 감사와 찬양과 경배에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온전함에 이르기를 힘쓰시라. 생명마저 제거되는 죽음도 유익이란 말은 하나님이 전부인 성도의 입술에서 나오는 노래이다.

가혹하다. 도무지 세상이 생산할 수도 카피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이런 곡조가 흐르는 입술의 소유자가 생산하는 삶의 고품격 가치와 향기가 마구 진동하는 유일한 현장이 교회이길 소원한다. 그러나 추하고 역겨운 악취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원흉이란 오명만 벗어도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이 실소할 뜬구름 공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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