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자랑할 게 없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내 영혼을 소생하게 하시고 의의 길로 이끄신다 (시23:3)

본문에는 분리할 수 없는 의미의 사슬이 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은택과 역사는 1) 영혼의 소생이 선행하고 2) 의로운 길로의 인도가 이어지고 3)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된다. 다윗에게 영혼의 회복은 상태의 정적인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고 동적인 방향성과 결부된 변화였다. 즉 영혼의 회복에는 목적이 있는데 다윗의 경우에는 의로운 길로 행하는 것이었다. 의로운 길로 행하는 것은 나의 이름이 하늘까지 드높이는 목적과는 무관하고 오직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이 기념되기 위함이다.

목적론적 순서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정하시고, 이를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의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이를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영혼의 회복을 경험할 때 의로운 길로의 부르심이 있음을 읽어야 하겠고 영혼의 궁극적인 회복이 하나님의 영광과 결부되어 있음을 사려해야 한다. 동일한 관점에서, 의의 길이 목마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갈구하고 있다면 영혼이 소성되어 있다는 증거로 보아도 무방하다.

영혼의 소생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회복이다. 건강의 회복은 자신과 연관된 것이고, 관계의 회복은 타인과 연관된 것이고, 재정의 회복은 물질과 연관된 것이지만, 영혼의 회복은 하나님 자신과 직결된 문제이다. 주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영적 회복을 원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해가게 하지 않으시고 두려움이 없게 만드신다. 해로움이 우리에게 발생하지 않게 하시는 게 아니라 그런 해로움도 두렵지 않게 만드신다. 이로 보건대 세상에는 영혼의 회복을 훼방할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영혼의 소생이 없다면 건강과 관계와 재정의 어려움이 해소되고 풀어져도 의의 길은 안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걸 감지할 영적 신경이 없어서다. 그리고 의의 길에 머물지 않고서는 어떠한 영광도 하나님께 돌리지를 못한다. 실을 바늘의 허리에 묶어서는 사용하지 못함과 일반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열망이 있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질서가 있고 경로가 있다. 즉 태초에 인류의 조상에게 생기를 주입했던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야 하고 의의 경로로 이끄셔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소생하는 중생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고 의로운 길로의 이끌리는 성화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며 이로써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보태어짐 없이 하나님은 스스로가 완전한 영광에 이르신다. 우리의 영광과 감사는 주님께서 그런 하나님의 영광에 우리를 가담시켜 주셨다는 것에 있다. 시인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자랑할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직 여호와가 목자시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부족함도 없는데 영혼의 소생이나 의로운 삶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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