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고대인의 축복은?

고대인의 축복은 지상적인 것이었나? 칼빈은 아니라고 한다. 

1) 잃어버린 에덴의 복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지극히 괴로웠을 아담은 고달픈 노동의 소산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2) 하나님의 저주와 힘겨운 노동도 부족한듯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참살하는 극도의 비극까지 견뎌며 죄의 삯이 사망이란 사실을 목도해야 했다. 

3)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만이 아니라 산 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깊은 증오와 격한 몸서리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4) 노아는 온 세상이 쾌락으로 태평의 세월을 구가하고 있을 때에 100여년간 방주 건조에 시달렸다. 겨우 죽음을 면하기는 하였으나 백번 죽는 것보다도 더 고생스런 삶이었다.

5) 10개월간 방주는 무덤이나 감옥을 방불했을 것이다. 짐승들의 배설물에 파묻혀 살았으며 외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갇혀 살아서다. 

6) 이러한 괴로움 이후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홍수에 살아난 아들까지 자기를 조롱하고 결국 자기 입으로 그 아들을 저주해야 했다. 

이로 보건대, 구약의 선조들도 지상의 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나은 하늘의 생명을 늘 묵상하고 고대하며 살았다는 게 칼빈의 입장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만이 소망이다.

 칼빈, 기독교 강요, II.x.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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