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일상이 감사의 열쇠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이는 주께서 나를 붙드셨기 때문이라 (시3:5)

익숙한 일상에서 의식의 손을 떼는 건 반복의 나른함 때문이다. 일상의 반복성은 몸이 기억한다. 정신줄을 몽롱하게 놓아도 생존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진다. 물론 성경을 읽다가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함이 마땅하단 뉘앙스와 마주치면, 얼른 거두었던 의식의 촉수를 애써 일상으로 내뻗는다. 그러나 이벤트성 감사 탐색도 잠깐이고 금새 쉬 무뎌진다. 그러기를 일상처럼 반복한다. 일상에 대한 나의 이러한 무감각과 푸대접의 심각성은 다윗이 본문에서 보란듯이 고발하고 있다. 신앙의 가벼움은 주로 일상에서 들킨다. 물론 회복의 좌소도 철야나 수련회가 아니라 일상이다.

다윗에게 침소는 무덤이요 잠은 죽음의 연습이다. 침소는 모든 무장이 해제되는 곳이고 잠은 정신의 모든 의식적인 활동의 중단이다. 죽음과 닮았다. 그래서 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자기부인 연습이다. 바울과 방식은 달랐지만 다윗도 날마다 죽었던 사람이다. 물론 그렇게도 많은 대적들의 시퍼런 칼날이 인기척도 없이 침소를 출입할지 모를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멀쩡하게 깨어나는 것이 다윗에겐 기적이요 감격일 수도 있었겠다. 비록 그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깨달음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인간의 자고 깨어남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과 은혜를 깨닫는다. 다윗이 지불한 비용으로 알려진 진리의 내용을 우리에게 동일한 상황이 재연되지 않더라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큰 은혜겠다. Thanks be to David!

사실 본문에서 읽어지는 하나님과 시인 사이의 관계는 내 안에 질투가 불끈거릴 정도로 친밀하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을 분이겠다 싶다.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맺어진 업무상의 관계성이 아니라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감지되는 관계여서 더더욱 감미롭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험하는 다윗의 신앙은 이벤트가 아니었다. 밤마다 생명을 의탁하고 아침마다 부활에 준하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인정했다. 일상의 기초가 튼튼한 신앙은 무너지지 않는다. 훤칠한 설교와 두터운 집필로 명성이 하늘까지 이르는 분들도 일상의 신앙적 지반이 부실하면 훨씬 더 치명적인 추락을 각오해야 한다. 일순간에 무너진다. 장사가 따로 없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저울추에 일상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의 솔직한 중심이 꾸며지지 않은 현장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밝았는데 심장이 여전히 박동하고 있다. 주께서 졸지도 않으시고 밤새 일하셨나 보다. 일상을 감사의 샘으로 여긴다면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감사가 회복인데 일상이 그 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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