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9일 토요일

Talk with David Hoekema

대화가 길어 요지만 먼저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토니 후크마 교수님의 두 박사학위 논문(The Centrality of the Heart, Herman Bavinck's Doctrine of Covenant) 중에 첫번째(1948)는 프린스턴 신학교에 제출을 했으나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야 할 정도로 심난한 평가와 더불어 돌려 받았는데 수정하는 것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리고 두번째 논문을 5년동안 연구하고 작성하여 제출(1953)했고 그 논문이 결국 박사학위 논문으로 통과된 것입니다. 가혹한 평가의 이유는 1) 지도교수 Kuizenga가 논문제출 1년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고 2) 논문심사 위원회의 한 교수도 학교를 동일한 이유로 떠나게 되어 3) 위원회가 재구성된 탓이라고 말합니다.

안토니 후크마의 아들 데이빗 후크마(David Hoekema)의 사무실로 갔다. 이는 아버지의 박사학위 논문에 얽힌 사연을 밝히고자 수일전에 신청한 만남이다. 데이빗은 인자한 표정에 맑은 눈동자가 잘 다듬어진 백색 구렛나루 사이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분이셨다.

David: 너가 폴 한(Paul Han)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Paul: 네, 맞습니다. 따뜻하게 맞아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David: 아버지에 대한 한국인 친구들과 너의 그런 궁금증이 대단히 흥미롭다. 너의 물음으로 아버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시 잠길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단다.

Paul: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스케줄이 바쁘신 것 같아 본론에 해당되는 질문을 곧장 던질게요. 아버지의 두 박사학위 논문에 얽힌 사연부터 듣고 싶습니다. 첫번째 논문이 거절된(rejected) 건가요?

David: 아니, 거절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목회를 하면서 성실하게 논문을 완성했고 학교에 제출했지. 그리고는 몇 주가 지나서 논문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판과 수정을 요청하는 코멘트가 거칠게 박힌 논문을 되돌려 받았다. 그것을 보시는 아버지...아, 깊은 실망에 젖은 아버지의 그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결국 수정하는 것보다 논문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셨지.

Paul: 어떤 비판이 있었길래 그토록 실망하신 건가요? 새로운 주제로 5년이나 투자하실 정도로요? 혹시 코멘트를 보셨나요?

David: 그때 내 나이가 2살이라 읽지는 못했겠지. 읽더라도 이해를 못했겠지...하하하. 이후로 나도 아버지와 그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대화해 보지는 못했단다. 아마도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 논문을 제출하기 1년전에 지도교수 Kuizenga가 병환으로 은퇴했고 논문심사 위원들 중의 한 교수도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지. 당연히 학교는 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신학적 입장과도 달라졌던 것 같애. 구체적인 신학적 입장차는 나도 모르겠다.

Paul: 아, 그렇군요. 그 정도면 한국의 친구들과 저의 의문은 이제 풀린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좀 더 나누어도 될까요?

David: '예약'된 시간이니 얼마든지 하렴.

Paul: 교수님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신 건 아버지께서 권하신 건가요?

David: 아버지는 나의 진로에 대해 어떠한 압력도 가하신 적이 없으셨지. 늘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다만 삶으로 보이시는 방식으로 푸쉬를 가하셨지. 하하하. 가하기는 한 거네. 아, 하나 생각난다. 박사학위 논문 들어갈 때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군. '지도교수 건강을 먼저 확인하고 논문을 시작해라.' 자기처럼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러신 거지. 아버지의 가장 큰 영향은 그분의 죽음이다. 그 죽음이 나의 진로를 확정했지. 아버지는 아무런 증세도 없다가 갑자기 뇌졸증 때문에 두번 쓰러 지셨는데, 두번째 쓰러지신 이후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지. 뇌가 완전히 사망한 것을 확인한 이후 가족들은 호흡을 보조하던 장치를 제거하는 결정을 내렸어.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칼빈 공동체의 사랑이 얼마나 크던지. 아, 그 출렁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말이야. 슬픔과 감동의 눈물이 흐르더군. 그렇게 장례식을 하면서 '칼빈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결심을 굳혔지. 아버지는 죽음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끈 셈이네.

Paul: 감동적인 얘깁니다. 아버지를 뒤이어 신학으로 전향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오기 전에 이력을 훓어 보았는데 신학도 아니고 철학의 이론적인 부분도 아니고 대단히 실천적인 정치철학 분야에 올인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세상에서 아버지 신학의 사회적 구현을 의도하신 건가요?

David: 오호, 이 질문은 정말 마음에 드는 걸! 아버지의 유지를 신학으로 전향하는 방식이든 실천적인 철학을 통한 사회적 구현이든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실 아버지의 마지막 책을 편집하며 적잖은 생각은 했었지만. 여튼, 개혁주의 신학과 북미 개혁교회 견지를 따라 아버지가 출입하지 않은 사회적 영역에서 남은 여생동안 섬기는 것도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Paul: 최근에 정당전쟁 이론의 재해석을 시도하는 책을 집필하고 계신 듯합니다. 격동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상황이 고려된 것인가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요?

David: 정당전쟁 이론은 교회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늘 느끼던 분야야. 사회의 공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전쟁의 불가피한 선택을 말하지만 동일한 목적을 보다 평화적인 방편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붓을 들었지. 조만간 출간이 될 것 같아.

Paul: 그럼 교수님이 생각하는 대안적인 해법을 귀띔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신학을 공부하는 예비 신학자로, 원수를 대하는 최고의 무장은 십자가의 사랑이라 말해야 하거든요. 보다 참신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David: 좋은 질문이네. 답변은 어렵구. 나도 뾰족한 해법을 알지는 못한다네. 구도자의 목마름을 비판과 재평가의 방식으로 축이는 정도이지. 고민과 생각이 축적되면 그래도 좋은(better) 해법이 나오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어.

Paul: 그런 희망 자체가 어쩌면 놓치지 말아야 할 대안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교수님, 장시간의 대화, 감사 드립니다. 한국인 친구들과 저는 궁금증도 풀고 귀한 분을 발견한 뿌듯함도 느낍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David: 나도 즐거웠네. 아참, 한국에서 아버지의 번역본을 보내 왔는데 다음에 만나면 그것을 주지. 조심해서 가게~~~

Paul: 오호호, 정말 감사합니다. 저자의 아들 싸인도 빠뜨리지 말아 주시구요...ㅎㅎㅎ 또 뵐께요~~~

사진기와 녹음기를 구비하지 않아 현장감 흐르는 자료를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궁금증을 촉발하신 총신대 신대원의 이상웅 교수님 덕분에 귀한 교제의 문이 열렸다.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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