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6일 수요일

어떤 신학생의 질문

어떤 목회자가 '랍비 전도사'란 과분한 호칭까지 ㅎㅎㅎ 언급하며 던진 질문이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간극을 매우는 건 목회자의 인격적인 삶이다?

논리의 가지런한 그물망을 투과한 지식만을 '객관적 지식'으로 간주하며 거기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는 근대주의 지식론의 허술한 성격을, 지식에는 객체와 주체 사이의 인격적 공감이 전제되어 있다는 지식의 '비논리적 인격성'을 강조한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론에 근거하여 따끔하게 지적하고 넉넉하게 보완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서 관찰되는 미묘한 논리적 '충돌'을 논리적 어법으로 조화로운 해명을 시도하는 것의 한계를 논리의 격자에 반듯하게 담아낼 수 없는 목회자의 인격적인 삶으로 극복하는 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증인의 방식과도 부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터는 세상과 성경의 모든 역설적인 신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풀고자 했습니다. 탁월해 보입니다. 하나님-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분명 인간의 논리적인 이해의 지적 기재에 부합하는 신비의 적절한 해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처음부터 감취었던 것으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그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란 두 본성의 실재는 논리적인 어법으로 결코 풀어질 수 없는데도 우리는 전인격적 신앙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상의 권위적인 증인이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경에 계시된 모든 진리를 증언하는 믿음의 궁극적인 사도가 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논리적 언사를 한 마디도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적당하게...^^

2) 설교자의 역할은 교회 공동체의 사명이다?

질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설교자와 교회 공동체가 인격적인 소통으로 함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냐는 취지에서 묻는 것이라면 저는 긍정하고 싶습니다. 진리의 증인이 된다는 건 한 개인의 영웅적인 과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더불어 참여해서 수행해야 할 공동의 소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설교자든 목회자든 전도자든 성도이든 비록 가시적인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존엄성과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참여한 지체니까 당연한 것이겠죠? 하나님의 백성과 영생이란 궁극적인 운명까지 묶어 생각하고 살아간 모세나 바울처럼 오늘날의 목회자도 교회 공동체와 더불어 그런 일체감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게 옳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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