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8일 목요일

사랑의 부재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5:42)

주님의 육안으로 걸러진 경험적 지식이 아니다. 만세 전부터 만물을 벌거벗은 것처럼 직관하고 계신 분의 가슴 철렁한 진단이다. 유대인 및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이 없다신다. 에누리와 군더더기 없는 직설이다. 불신앙의 깊숙한 정곡이 움푹 찔린 느낌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궁극적인 차원은 사랑이다. 사랑은 주종관계, 군신관계, 계약관계 따위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인격적 관계의 극치를 일컫는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면서 그걸 찾으신다.

헌데, 주님의 논법이 특이하다. 사랑을 감상이나 최면이나 몰입이나 열정이나 도취라는 내적 정서의 과잉과 연결하지 않고 느닷없이 모세와의 연관성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하나님 사랑의 부재 고발하는 일을 모세의 몫으로 돌리신다. 이유는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님도 믿었을 것이라는 게 주님의 설명이다.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내 말을 믿겠냐'며 성경의 통일성과 설득의 우선성 문제도 언급한다. 유독, 하나님 사랑의 부재가 말씀의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논지에 매료된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모세의 기록을 믿는다. 이는 모세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한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성경이 믿어지지 않는데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가 궁금하고 그런 분을 향한 사랑의 실체가 또한 궁금하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지 않은 사랑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은 사람의 가공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주님은 하나님 사랑의 부재만 꼬집으신 게 아니다. 그것을 말씀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명하며 계시에 근거한 사랑의 본류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우선적인 사랑은 성육신을 통해 비로소 화들짝 계시된 게 아니다. 이미 모세의 기록으로 드러났고 동일한 계시의 판명성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과 그를 향한 사랑을 임의로 상상하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하다. 친절하고 은혜로운 계시로 검증할 수 있어서 가상의 주관적 삼천포로 빠지지 않게 되어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일평생 던져야 하고 일생을 통해 답변해야 할 신앙의 본령이라 하겠다. 그러니 주야로 성경에 전무할 수밖에...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