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2일 목요일

확신의 힘


13세기의 중세 철학자 Syger of Brabant는 
비록 당시 극단적 아리스토 철학으로 정죄된 
아베로 사상의 옹립자로 낙인이 찍혔으나 
신앙과 이성의 관계성에 대한 전통 확립에 
일익을 감당한 분임에는 분명하다. 
그의 신학 방법론이 마음에 든다.  

진리의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진리에 이르러도 그 진리를 지각하지 못한다. 
의심은 마음을 제한하여 
마치 육신의 발이 족쇄에 결박된 것처럼 
사유의 진일보를 훼방한다.

그러나 진리의 지식은 의심의 종결이다.
(cognitio veritatis est solutionum dubitatorum)

이는 17세기와 18세기에 번졌던 
데카르트 식의 신학 방법론인 
'의심'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확실성에 대한 목마름이
학문의 타오르는 열정에 기름과 같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데카르트 의심법은 양면성이 있는데,
하나는 불확실한 것, 의심의 여지가 일 말이라도 있는
것들을 다 가절하고 가장 판명하고 의심할 수 없는
사실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과 확실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란
주관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신학도
보다 판명하고 보다 잘 알려진 것에서
애매하고 난해한 것을 해명하는 방법을 취하지만
성경의 기록된 계시로
우리가 옳고 확실하다 판단하는 것까지도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는
일인치의 양보도 없다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 고백처럼 이해하기 위해
믿음(확실성)을 붙드는 게 정상이다.
사실 믿음의 본질에 지식과 이해가 자리잡고 있기에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믿음의 연장이다.
믿음면 되는데 믿음니까 연구하게 되는 거,
이거 뚱딴지 같은 어법이긴 하지만
믿음은 인간의 모든 기능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을 통솔하는 주도권도 가지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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