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9일 목요일

바울의 자발성

바울은 괜찮은 남정네다.
그의 화려한 스펙을 보건대,
당대에 신랑감 일순위
놓친 적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다.

출세가도 아우토반 질주하던 그가
그런 그가, 복음의 일군으로 돌변했다.
저간의 사정을 밝히는 그의 서신들을 보면
신적인 섭리의 지문이 여기저기 채취된다.

요약하면
영원으로 소급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과 계획,
그것이 시간의 역사에 펼쳐진 결과란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작정과 섭리라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경험 몇 조각을 가지고는
래티나의 적혈구에 혼신을 쏟아 뚫어지게 관찰해도
그 정체의 윤곽도 잡히지 않는 하늘의 신비가
이런 바울의 경험과 지각에서 머리둘 곳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이러한 신비로운 진리를
서신으로 발설한 당사자인 바울은
당연히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역사의 유장한 흐름에 맡기는 결정론적 삶을
살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야마가 돈다.

나는 바울의 역동적인 자발성 발휘에서
숨이 차오를 정도의 거인다운 믿음의 행보를 목격한다.
먹고 마시고 결혼할 권리 박탈해도 될 사람은 없고
밭 가는 소의 입에는 망을 씌우지 않아야 하고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인간의 상식과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말씀
이 모든 것에 부합한 권리의 행사를 마다하고...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 종이 되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율성을 발휘한다.
그리고는 복음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을 자신이 받을 상이란다.
바울이 지칠줄 모르고 몰아붙인 믿음의 질주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추구하고 있었는지
그 실체의 뽀얀 살갗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렇게 바울은 천국을 침노했다.
하늘의 창고 귀퉁이에 떨어진 엽전 한 개까지
탐욕의 손톱으로 긁어 챙기려는 침노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바로 천국이며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취하고
어찌하든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기 원하여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조차 배설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십자가의 길을 사수했던 그런 향기로운 침노였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숙한 자발성 발휘의 진면목 되시겠다.

그래서 Paul Han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쓰지는 말아야 할 텐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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