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안식

여호수아 12장과 13장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히브리서 4장을 근거로 여호수아 전체의 주제롤 안식으로 규정했다. 구속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성격과 소명에 관계된 것이다. 그게 안식이다. 믿음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약속의 땅은 바로 안식이다. 안식이 있다는 것은 평강과 고요와 안정과 만족이 있다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가나안 땅은 안식을 의미하고 기름진 젖과 달콤한 꿀이 흐른다는 특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호수아 전체는 안식의 대단히 역동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게으르고 안주하고 만족하고 나태한 느낌과는 완전히 상반된 전쟁의 기운이 여호수아 이야기 전체에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죄인을 용서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돕는 적극적인 안식일 준수를 통해 안식일의 본질을 잘 보여주신 것과 흡사하다.

안식일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맞이하는 일요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그들의 과제는 전쟁하는 것이었다. 안식의 땅에서 칼을 휘두르고 낭자히 흐르는 피를 목격하고 부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이 죽어가는 비극을 목격해야 한다는 것이 안식과는 너무도 무관해 보여서 여호수아 주제를 안식으로 잡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거북하다. 그러나 이 거북함은, 오히려 안식에 들어간 자의 삶에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개념과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는 안식의 개념조차 낯설 정도인지 우리의 그런 무지를 고발하고 있는 듯하다.

안식은 편안히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침노하고 힘써 추구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바울은 안식에 들어가길 힘쓰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힘쓰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노력에 달렸고 그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암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할 내용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자기와의 싸움은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들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치열하다.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안식이다. 하나님을 그런 방식으로 기념하되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안식이다. 이 땅이 허무하고 싱거운 분들에게 안식의 이러한 역동적 개념은 구속을 받아 안식에 들어가게 된 자들의 사람이 어떠해야 하며 어떠한 사람으로 초대되고 있는지를 너무도 분명히 가르친다. 즉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안식이며 그것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성도의 삶이고 소명이다.

여호수아 13장은 정복되지 않아 아직 소유권이 넘어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땅들도 분배의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다. 땅 분배는 모든 전쟁이 끝난 이후의 일이었다. 정복되지 않은 땅을 분배하는 행위 자체가 앞으로도 전쟁이 지속될 것이라는 미래의 암시이다. 이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이후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일보다 더 큰 일을 너희들이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흡사하다. 이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의 미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 면에서 보다 광범위한 일들이 전개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안식은 전쟁의 종료 이후의 고요한 평화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치루어야 할 자기부인 및 주님인정 전쟁이다. 그런 삶으로의 초대가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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