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거대한 소득

거대한 소득의 방편은 자족을 겸한 경건이다 (딤전6:6)

'나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 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졌을 때 자랑하게 된다'는 칼빈의 심리학적 언사가 떠오른다.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매겨진 빈부를 빗대어 열등과 교만의 선을 넘나드는 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의중을 거스르는 일이다. 주께서 당신의 눈으로 보시는 아름다운 조화를 따라 각자에게 베푸신 고유한 분량이 있어서다. 물론 하나님의 눈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도 존귀히 여김을 받음이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아주 희귀한 경우라 하겠다.

주님으로 부요하지 않으면 대체로 궁핍이란 자의식이 발동한다. 인간은 '그릇'이기 때문에 무언가로 채워져야 안심하고 비워져 있으면 불안정한 본성을 가졌다. 주님의 부재로 촉발된 궁핍의 빈자리는 다른 대체물이 없는데도, 우리는 본성적인 불안의 급박한 불을 끄고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일 정도로 탐스러운 '선악과' 취득으로 분주하다. 파스칼이 모든 인간에게 있다던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의 주머니'는 세상적인 시기와 자랑을 부추기는 온갖 잡동사니 흉물들로 채워진 쓰레기통 신세로 곧장 전락한다.

바울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들조차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간주한 맥락은 바로 이것이다. 땅에서 아무리 유용하고 고급스런 것이라 할지라도 가장 고상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채워져야 할 주님의 고유한 자리를 그것에 내어줄 수 없어서란 맥락 말이다. 그에게는 주님이 전부였다. 그리스도 때문에 능욕을 당하고 고난의 길에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동행하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와 낙의 상속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던 모세의 판단력과 세상의 감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고 싶어하는 바울의 정신세계 이면에는 뭐가 있었을까?

자족을 겸한 경건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취제 투입으로 확보되는 방편이 아니다. 그 경건은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상급이요 만족이 되신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이는 이것을 상실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헛되고 헛된 것으로 만들기에 믿음의 조상에게 결코 침묵할 수 없었던 진리였다. 칼빈의 말처럼,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복이라는 확신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헌신이나 진정한 경배는 불가능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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