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개혁주의 신앙 고백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혁주의 전통의 산실이라 할 16세기와 17세기 문헌들을 살펴야 하는데, 그 종류는 1) 신앙고백서 (confessio fidei), 2) 교리문답 (catechismus), 3) 교의학 (loci communes), 4) 주석 (commentarium), 5) 회의록 (acta), 6) 서신 (epistola) 등으로 구분된다. 당연히 문헌의 종류별로 개별적인 연구와 종합적인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

신앙 고백서는 다른 어떤 문헌보다 중요하다. 종교개혁 시대에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악취가 교회에 진동할 때 모두가 느끼고 알았지만 깨어있는 믿음의 사람들만 그 부패성을 고발하고 개혁의 절박성을 알리는 깃발을 목숨 걸고 흔들었다. 이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대응은 그들의 정체성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징계의 부당한 칼을 뽑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순교의 피를 흘리고 이단의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다.

피의 순교만이 진정한 개혁을 보증하는 건 아니었다. 여러 종교개혁 인물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진영의 정통성과 로마 카톨릭의 이단성 입증을 위해 결사적인 저항과 응전의 적극적인 붓을 들었다. 무엇보다 로마 카톨릭과 구별되는 개신교의 정체성을 시급히 표명하는 일에 우선적인 일필이 가해졌다. 이는 대단히 많고 다양한 고백서가 주로 16세기 초반에 출몰했던 이유기도 하다. 고백서 작성을 위해 성경과 교부들과 건강한 중세 문헌들에 대한 탐독과 연구와 정리와 진술의 지난한 작업에 들어갔다. 개신교의 고백적인 문화는 주로 개혁주의 진영에서 주도했다.

개혁주의 고백서는 신앙과 신학의 출중한 두뇌들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 최고급 역량을 발휘해서 산출한 개혁교회 얼굴과 같은 문헌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역사 속에 교회의 공적인 이름으로 심어지는 방식이 바로 교회에 의한 진리의 공적인 고백이다. 그것의 역사적 흔적이 고백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교회의 관심사는 긴 세월동안 의식의 밑바닥을 맴돌았다. 신학적 자격증 취득의 일환으로 특정한 고백서의 부분적인 연구가 드문드문 있었지만 주로 학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정도의 반향만 일으켰고 범교회적 성찰과 진단과 진보의 발판까지 제공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최근에 앞서 언급된 고백서의 중요성에 일찍이 눈을 뜨고 역사의 비좁은 골목을 해치고 들어가 개혁주의 고백서라 불리는 문헌들을 찾아 영어로 번역하고 책으로 묶어낸 인물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James Dennison이다. 데니슨은 워싱턴에 있는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한 신학교 Northwe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사와 성경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지만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프란시스 튜레틴의 [변증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영역본의 책임 편집자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데니슨이 편찬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 모음집은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in English Translation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Press)이다. 현재 1권 (2008)과 2권 (2010)과 3권 (2012)이 나왔으며 4권과 마지막 5권은 2013년도에 나온단다. 오늘 3권 전체가 수중에 들어왔다. 포장을 뜯고 책장을 펼쳤다. 아~~ 정말 탁월하다. 세 권에 포함된 개혁주의 고백서는 무려 91개다. 데니슨의 지속적인 노고에 찬사가 저절로 쏟아진다. 라틴어나 고전 불어나 고전 독일어를 모르시는 분들도 이제 영어로 16-17세기 개혁주의 고백서 전부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혁주의 고백서 모음집은 데니슨 자신만의 독창적인 활동이 아니다. 선행자가 있었다. 그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주로 니어마이어 (Hermann A. Niemeyer)의 Collectio confessionum in ecclesii reformatis publicatarum과 뮐러(Ernest F. K. Müller)의 Die Bekenntnisschristen der reformierten Kirche, 및 부쉬(Eberhard Busch)의 Reformierte Bekenntnisschristen에 근거해서 번역하고 편집했다. 그리고 각 고백서는 간단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서문과 고백서의 영역본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고백서의 원문에 대한 서지사항 또한 친절하게 제공한다.

조엘 비키(Joel Beeke)는 데니슨의 노고로 개혁주의 신앙의 풍요로운 발전과 조화와 경건을 입증하는 놀라운 성취의 발자취를 단권으로 추척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일독을 권하신다. 제네바 대학의 이레나 바쿠스(Irena Backus)는 이 문헌이 모든 개혁주의 공동체가 정통적인 것이라고 인증한 문헌들의 종합적인 영문 판본이고 대부분의 고백서가 영어로 처음 번역된 것이라며 책의 고유한 기여도를 꼬집는다. 이 고백서 모음집을 통해 근 2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종교개혁 공동체의 다양성과 발전의 도식적인 액기스를 영어로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바쿠스의 마지막 추천의 변은 이렇다: "모든 도서관이 필히 소장해야 할 문헌이다."

교회가 남긴 가장 짙은 신앙의 발자취가 신앙 고백서란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교회가 뭔가 이상할 때 그 정체성을 확인하는 길은 개혁주의 고백서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그 본류로 소급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본류의 중심에 개혁주의 신앙 고백서가 있다. 이 고백서를 번역하는 번역자와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그들의 땀방울이 한국교회 회복에 미칠 영향력의 크기는 측량을 불허한다. 하여 본인도 관심있는 분들의 소장과 일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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