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5일 수요일

믿음의 분량대로

자신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지 마라 (롬12:3)

자신을 영화의 등장인물 같이 관람하는 꿈이든지 깨어서 정신이 말짱한 중에라도 자신을 밖에서 보는 객관적 창문이 인간에겐 없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형을 볼 때에라도 꿈과 유사할 뿐 여전히 유체이탈 상태가 아니다. 몸을 떠난다 할지라도 자신을 이해하는 지각의 객관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기에 몸과 영혼의 분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문제의 매듭은 풀어지지 않는다. 자각은 의식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한 경우를 일컫는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서다.

굴곡된 주관성의 결박을 푸는 유일한 해법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쉽지가 않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삶 전체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시한 대안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척도(μέτρον πίστεως)이다. 믿음의 유비(analogia fidei) 혹은 믿음의 규범(regula fidei)은 여기에서 산출된 개념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객관성 확보의 비결로 제시된 믿음의 규범이 잘못 적용되면 통제되지 않는 주관성의 원흉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 거부되는 경향도 있지만, 경건한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경 전체를 가리키고 이해하는 해석의 기준이란 개념으로 본다면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과 비교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의 기준을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필히 삼천포로 곤두박질 친다. 타인에 대한 상대적 우등과 스스로의 만족에 가슴이 벅차도록 뿌듯하게 살았어도 여전히 덧없는 일장춘몽 인생이다. 우리를 예정하고 창조하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믿음의 분량대로, 즉 성경 전체를 따라 생각해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시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바 되셨다. 우리는 그의 몸에 지체로 참여하는 방식을 따라 그분을 머리로 소유한다. 우리는 주어진 은사도 다르고 역할도 다른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동등하다.

자신에 대해 우열이나 아래위 개념으로 교만과 열등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 각자에게 최고의 인생이 주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일만 남았다. 당장 눈에 밟히는 삶의 암담한 현실도 최고의 인생에서 생략될 수 없는 한 조각이다. 슬픔을 슬퍼하고 기쁨을 기뻐하는 중에 다채로운 그러나 조화로운 삶의 심포니가 구성되는 거다. 삶은 강약과 경중과 완급과 흑백의 교차로 충만하다. 연약한 형제는 감싸주고 넘어진 자매는 일으키는 역할도 수시로 교차한다. 그게 다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으로 보면 모순이나 충돌이나 대립이나 우열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과 보완과 동등이다. 성경 전체로 자신을 보면 동의하지 아니할 수 없다.

자존감은 성경으로 세우시라. 오늘은 무의식 중에라도 중단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생각의 기준에 '믿음의 규범'을 장착하는 하루이길 소망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