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올레비아누스 신학

우르시누스와 더불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작성의 주역으로 잘 알려진 헤르보른 신학자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1587)는 강에서 보트가 뒤집어져 죽음의 강물로 빠져드는 친구를 구하다가 자신이 익사 직전까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 '살려만 주신다면 자신의 삶을 의로운 병기로 드릴 것이다'는 서약을 황급히 내뱉었다. 그리고는 성경과 더불어 붙잡은 문헌이 칼빈의 책이었다.

그는 부르주의 법학부에 들어가 박사학위 취득한 후 9개월의 짧은 법조인 생활을 접고 제네바로 갔다. 칼빈과의 인격적인 교분 속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다. 쮜리히로 가서 불링거와 버미글리, 그리고 로잔에서 베자를 만났다. 제네바로 돌아오는 길에 칼빈을 하늘의 위엄으로 종교개혁 대열에 가담시킨 파렐을 만났고 파렐은 기존의 습성을 따라 올레비아누스로 하여금 종교개혁 메시지의 운반자가 되는 게 어떠냐고 (강)권하였다. 여기에 칼빈과 비레의 설득도 가세했다. 

결국 그는 본향으로 돌아와 논리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얻었으나 멜랑톤의 변증학을 교재로 사용하며 수업을 종교개혁 신앙 전수의 계기로 삼았다. 이후에 그는 헤르보른 지역에서 목회자가 되었고 마지막 생애를 헤르보른 아카데미 설립과 그곳의 초대 교의학 교수직에 바쳤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 1586년에 그가 출판한 마지막 문헌은 종교개혁 신앙의 교육용 교재로서 제작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요약(Institutionis christianae religionis epitome)]이다. 

개혁주의 언약신학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 올레비아누스는 이처럼 칼빈의 신학으로 신학의 생을 시작했고 칼빈의 신학으로 끝마쳤던 전형적인 칼빈주의 신학자다. 그가 청년들을 생각하며 기독교 진리의 총화를 이것보다 더 잘 구성하고 담아낸 다른 문헌이 없다고 확신하며 선정한 책이 바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였다. 교리문답 작성 및 교리교육 분야의 달인이 그의 교육학적 혜안으로 고른 최고의 문헌이라 하였다면, 우리도 교회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교리교육 교재로 채택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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