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수요일

잔키우스 오페라

이탈리아 출신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잔키는 15세에 어거스틴 계열의 수도원에 들어가 피터 마터 버미글리 밑에서 아퀴나스 전통을 경험하며 신학적 잔뼈가 굳었고, 교부들을 비롯하여 부써, 멜랑히톤, 루터, 그리고 칼빈의 문헌들을 탐독하며 신학의 근육을 키워갔다. 당연히 피터와 칼빈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물론 스코투스 전통과 '은밀한 칼빈주의' 딱지가 붙은 멜랑히톤 신학의 영향도 상당부분 감지되는 인물이다. 자국에서 추방을 당하는 망명자의 설움 속에서도 그는 스트라스버그에서 구약학 교수로 섬겼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선 우르시누스 후임으로 교의학을 가르쳤다.

 그가 묻힌 무덤의 돌비에 새겨진 비문이 눈길을 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이 그를 억류하니 자기애는 중단되고 하늘의 땅이 목말랐던 잔키우스, 여기에 잠들다. 너무나도 선량하고 출중하며 눈이 부시도록 연마된 잔키우스, 그의 수다한 작품들이 증인의 열린 입술이다. 그에게서 가르침을 듣고 삶을 지켜본 이들의 증거도 한 결이다. 그의 영혼은 떠났으나 땅은 지금도 그를 향유하고, 그의 흙은 왔던 곳으로 갔으나 그의 이름은 죽음을 모른다." 이런 잔키우스, 그의 1619년 제네바판 전집이 구글 북스에서 애서가의 커서를 기다린다.

Girolamo Zanchius, Omnium operum theologicorum (Geneva, 1619)

Primus, Secundus, Tert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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