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일 월요일

에스더 8장, 설교한다

1.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2. 사건의 전개에서 인과적 사슬에 하나님의 섭리가 언급되지 않는다.

3. 유다인의 멸절을 획책하던 하만은 죽었으나 그가 작성한 죽음의 조서는 여전히 그 효력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사악한 대상만이 아니라 그 대상의 효력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에스더는 그것을 감지했다.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4. 결국 유다인을 멸하라고 작성된 조서는 역풍이 되어 유다인을 치려고 한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되는 조서로 뒤바꼈다. 참으로 놀라운 역전 드라마다.

5. 그러나 원수들을 대하는 에스더와 모르드개 처신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는 마치 사무엘상 15장 3절에 언급된 것처럼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는 명령과 유사하다.

6.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모두 생명에는 생명으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는 모세의 법에 충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과의 외관상의 충돌은 어떻게 할 것인가?

7. 사울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비록 하나님께 드릴 제사용 재료로서 비축할 목적으로 양들을 살려둔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행위로 정죄된다. 어쩌면 자신의 판단력이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인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여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인간의 건강한 인도주의 태도마저 무장해제 당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8. 결국 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의 상식보다 옳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여전히 난감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와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 유다 사람에게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었다고 에스더 기자는 기록한다. 심지어 본토 사람들도 유다인을 두려워 하여 유다인 되는 자들도 많았단다. 유다인의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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