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5일 수요일

그리스도 예수의 세계를 이어간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1:1)

여기서 "세계"는 히브리어 "엘레 톨르돗"을 번역한 헬라어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의 국역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계보, 사적, 대략 등으로도 번역된다. 번역이야 어떠하든 이 단어는 창조 이후로 하늘과 땅의 역사에 중차대한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역사의 내용과 의미의 축을 흔들고 역사의 분기점을 마련할 정도의 획기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동원되는 언어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바로 아브라함 및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예수의 획기적인 세계를 이어가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아브라함 자손이라 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을 입어 믿음의 조상과 이스라엘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로 하여금 큰 민족 혹은 백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처음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또한 다윗의 자손이라 한 이유는 "네 몸에서 날 자로 영원히 네 위에 앉게 하리라"는 언약이 다윗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윗의 왕성한 정복은 인간적인 세계정복 야욕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과 모든 열방에게 확대될 왕국의 확장성 상징이다.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영원한 존속 언약은 사실 솔로몬 이후로 퇴색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몸에서 날 이후 왕들의 실패와 퇴락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에 의해서 통치되고 보존되어 영원히 이어지는 왕국이 아님을 반증한다. 역사의 이러한 인식이 중요하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셔서 친히 왕의 주춧돌이 되시고 통치자가 되셔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의 윤곽을 이스라엘 역사가 흥망을 거듭하며 조금씩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오늘'이란 하루를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세계와의 매듭 속에서 이해하고 싶다. 이는 시간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의미의 흐름 속에 오늘이 있다는 이해이다. 하루가 시간의 무표정한 반복처럼 건조하게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계보 혹은 세계의 완성을 향해 한 걸음씩 옮겨가는 여정임에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루치의 흥분과 설레임이 분량은 동일해도 농도는 하루하루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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