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8일 토요일

처벌과 폭력

권현익 선교사님 두번째 글입니다.

< 치리와 징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잔인한 <보복 > 

토론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마지막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쟎습니까...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비행사는 가톨릭 교도로 신부에게 출정시 축복기도를 받고 가서 국가와 예수의 이름으로 원폭을 투하했는데요... 그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가장 가톨릭이 왕성해 수도원과 신부 수녀 가톨릭교도들이 가장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최고의 주권은 누구였을까요...? 죽은 사람들은 단순한 '시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를 이룬 형제요 자매라는 것이지요... 국가가 아닌 예수께서 우리의 최고의 주권이라는 뜻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

제가 프랑스의 비미(Vimy) 라는 한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그곳은 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과 대치한 캐나다 군대가 있었던 곳으로 그곳 전투에서 6만명의 캐나다 군인들이 죽었던 곳입니다. 이때 캐나다 젊은이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영국의 많은 젊은이들도 죽었습니다. 그 영국인들은 다름 아닌 1914년에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07년에 영국 웨일즈에서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때 많은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선교에 헌신을 하고 준비하게 되지만 이 전투에 참여하여 그 젊은 헌신자들은 선교와 상관없이 대부분이 죽어 갔습니다. 

어쩌면 독일군 가운데 많은 크리스찬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서로가 원수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전쟁을 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고 용납하는 것이지만 정복욕으로 가득찬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순순히 평화적 태도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수 많은 시행 착오를 통하여 잃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무엇이 바른 길인지 습득해 가더군요.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세 시대 가운데 안타깝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 그리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던 시대라 인권이라는 것은 권력자들이나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시대였음을 ... 

위에서 언급한 두 사건은 분명 가슴 아픈 사건들이지만 그러나 이런 이유로 일본이나 독일에게 행했던 <처벌> 그것이 비록 전쟁이라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 자체를 폭력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정당한 전쟁에서 우리의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순국 열사들의 수고가 자칫 장기판의 졸이나 병정 놀이에서 상대를 정복하기 위한 한 수단물처럼 여겨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전쟁이 <폭력>이었는지 아니면 <당연한 대응>이며 <응징>이었는지는 오늘날의 그 관점만으로는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우리들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그 고통 자체는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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