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수요일

말씀의 왕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행6:7)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흥하고 망하는 가시적인 현상을 쉽게 목격한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숫자가 많아지고 어떤 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하여 흥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한 것들의 부재로 말미암는 쇠퇴도 많다. 이러한 현상을 교회사의 노른자로 여기고 현미경 분석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괜찮은 교훈을 생산하고 그걸 역사에서 건져야 할 교훈으로 삼아 장기간 보존하고 축적하는 일련의 역사화 작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누가는 교회의 흥왕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진 탓으로 돌린다. 말씀의 왕성을 기준으로 교회의 흥망을 진단하는 누가의 예리한 붓길에 역사신학 전공자는 매료될 수밖에 없다. 누가의 경건한 역사적 감수성은 이사야의 글에서도 확인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어지럽고 비틀거리는 쇠락은 환경의 독주나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잠들게 하는 여호와의 신 때문이요 그들의 눈인 선지자를 가리고 그들의 머리인 선견자를 덮였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을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겠다.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 공감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각자에게 친숙한 가까운 원인들이 두루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하나님의 말씀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그런 진단은 피상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우리의 지각과 인과율이 촘촘하다 해도, 그런 그물망에 걸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의 빛으로 조명된 현실인식 없이는 상황의 표피에서 벌어지는 주장의 대립과 감정의 충돌과 견해차의 조율로 우리의 관심사가 소진될 것이고 그러면 교회의 개혁과 흥왕은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교회의 흥망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교회의 참된 개혁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교회의 개혁과 흥왕의 인과적인 방식은 말씀의 왕성을 통해서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 동시에 말씀의 왕성은 성도된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의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 쇠락의 책임소재 떠넘기기 공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당성이 없다.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말씀의 왕성에 각자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이바지할 때이다. 이런 방식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감당해야 할 말씀의 왕성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재능으로 짧은 여생을 살겠지만 교회사 속에 등장했던 '최고'의 신학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일단은 전념하고 싶다.

물론 말씀의 왕성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과 우리 각자의 공로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은 망각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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