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정약용의 공부론

공부에 자포자기 행보를 보이는 아들에게 정약용은 대뜸 "세상 선비들이 큰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아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곧장 "과거시험 준비 때문"이란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강진으로 유배된 폐족의 처지를 직시하며 관직에 나가는 일이 원천봉쇄 되어 "너희는 과거시험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기회냐"며 독서하고 필사하고 저작하는 일에 전념할 것을 자식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꾸짓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는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공부이길 중단하는 것입니다. 동기의 부실이 공부의 목덜미를 붙잡는 원흉일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공부는 부나 명예와 같은 보상에 대한 기대에서 추동력을 얻지 않습니다. 공부 자체가 순수한 목적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공부일 수 있습니다. 어떤 목적에 경도되면 공부는 추하고 왜곡된 경향성을 띄기 쉽습니다. 전인격과 삶으로 익히고 체득된 공부는 그 자체가 세상의 복입니다.

신학의 길을 걷거나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부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처럼 진리의 추구 자체가 우리에겐 목적이요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막강한 수단을 확보하는 준비의 일환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큰 공부와 깊은 진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진리를 배우고 체득해도 땅에서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보다 큰 공부에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것입니다. 큰 공부는 자잘한 유익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큰 공부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큰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진리가 깊을수록 세상에 비추는 빛은 더욱 밝은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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