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율법을 파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스스로를 내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롭다고 하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 율법을 온전히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함과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으로 인하여 율법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운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유효하게 만든다는 뜻도 있습니다. 율법을 율법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이란 말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유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대는 율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행위와도 믿음은 대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대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의 행위라는 방식으로 "자신 안에" 머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통해서는 어떠한 의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만 들추어낼 뿐입니다.
복음과 율법은 서로에게 반대가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인데 이것은 율법의 마침과 완성을 위한 것이기에 결코 율법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율법의 행위와 무관한 것입니다. 믿음을 율법을 버리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는 성경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마저 헛된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율법의 도덕적인 교훈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며 거듭난 자에게 영혼의 양식이며 발의 등이며 길의 빛입니다. 율법을 무시하면 현대판 말시온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율법이든 복음이든 믿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윗에게 송이꼴의 당분을 능가하는 달콤함을 선사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그가 향유의 대상으로 삼고 주야로 묵상했던 것도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가 고난도 심지어 죽음조차 유익으로 여겼던 이유도 그 계명에 대한 깨달음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율법의 근본으로 돌아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의 유효성을 누렸던 분입니다.
바울도 그런 믿음의 선배가 남긴 율법에 대한 이해의 족적을 밟아가신 분입니다. 저도 그 족적에서 이탈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스스로를 내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롭다고 하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 율법을 온전히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함과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으로 인하여 율법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운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유효하게 만든다는 뜻도 있습니다. 율법을 율법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이란 말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유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대는 율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행위와도 믿음은 대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대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의 행위라는 방식으로 "자신 안에" 머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통해서는 어떠한 의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만 들추어낼 뿐입니다.
복음과 율법은 서로에게 반대가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인데 이것은 율법의 마침과 완성을 위한 것이기에 결코 율법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율법의 행위와 무관한 것입니다. 믿음을 율법을 버리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는 성경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마저 헛된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율법의 도덕적인 교훈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며 거듭난 자에게 영혼의 양식이며 발의 등이며 길의 빛입니다. 율법을 무시하면 현대판 말시온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율법이든 복음이든 믿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윗에게 송이꼴의 당분을 능가하는 달콤함을 선사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그가 향유의 대상으로 삼고 주야로 묵상했던 것도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가 고난도 심지어 죽음조차 유익으로 여겼던 이유도 그 계명에 대한 깨달음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율법의 근본으로 돌아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의 유효성을 누렸던 분입니다.
바울도 그런 믿음의 선배가 남긴 율법에 대한 이해의 족적을 밟아가신 분입니다. 저도 그 족적에서 이탈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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