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0일 일요일

하나님이 사랑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라 (요일4:8)

사랑은 언어의 사용적인 성격이 그대로 발휘되어 그 의미가 사람들의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해서, 사랑의 진위와 유무를 확인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사랑만 그러한 게 아니다. 원래부터 이 땅에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기준이란 게 도무지 존재한 적이 없었고 때때로 독단과 대체로 합의가 있었을 뿐이다. 기준의 부재는 언제나 혼돈의 온상이다. 그 혼돈은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제 길을 걸어가면 그게 익숙해져 그만 질서로 둔갑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람들은 사랑의 개념과 대상과 방법을 자신이 정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들 정한다. 세상은 헤아릴 수 없도록 중다한 사랑의 현상들로 터져버릴 지경이다.

본문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아가페'란 말로 서술한다. 여기서는 사랑이 어떤 기능이나 역할이나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하나님 이외에 아가페의 대명사 혹은 사랑과 동격으로 불리워질 만한 어떤 피조물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랑의 근원과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랑'이란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와 기준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문장은 'What is love?'란다. 가장 흔하고 목마른 것인데도 가장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고 모르는 게 바로 사랑이란 사실의 작은 증거겠다. 어쩌면 사랑의 비밀이 하나님께 눈길을 돌리지 않고서는 알려지지 않도록 주께서 의도하신 게 아닌가를 유추해 보게 된다.

사랑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이다,' 이런 게 통상적인 답변의 양태일 것이지만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그 사랑의 의미가 표상되는 방식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함'이라는 진술이 이어진다. '하나님이 사랑'이란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풀어지며, 동시에 뒤집어서 생각하면 하나님 사랑의 실상이요 유일한 표현형인 그리스도 예수를 임의의 사사로운 방식이 아니라 오직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으로 알아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이렇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알려지신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소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요한은 단언한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고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애(amor sui)'의 무의식적 투사일 뿐이며 그걸로는 하나님 지식을 취득하지 못한다. 주께서 명시해 주셨듯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란 사랑의 원리가 배제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빙자한 거래나 투자일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리대로 사랑하지 않고서도 획득한 하나님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와는 무관한 이성의 분비물일 뿐이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 전체가 증언하고 가르치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했다. 사랑 이외에 하나님을 알게 할 다른 방법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칼과 창으로 복음화를 시도했던 과거의 난폭했던 오류로 인해 역사는 긴 고통의 댓가를 지불해야 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여러 모양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런 오류들이 이단 발생사와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세월의 이맛살을 오랫동안 찌푸리게 만들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방식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체요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유일한 새 계명으로 '사랑'을 명하신 것은 그것만이 하나님을 알고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에게 전하라는 말씀이 실현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법 밖에서는 하나님을 알지도 전하지도 못한다. 기적적, 지식적, 일시적 신앙의 달콤한 유혹과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어거스틴 교부가 믿음의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아픈 경험담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다. 이빨이 황금으로 거듭나고 죽은 자가 무덤에서 뼈다귀를 일으켜 아침마다 '굿모닝' 할지라도 복음의 정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복음의 본질을 가리기 십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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